양광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1년 동안 전쟁준비를 한 후, 612년 113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당하를 건너 요동성 등 국경 부근의 여러 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장안성(금주)으로 바로 보낸 수군도 패수(소릉하)에서 대패했고, 별동대 30만을 장안성에 보냈으나 보급 실패로 굶주려서 후퇴하다 살수(연태하)에서 거의 다 죽었다. 본고의 위치 비정은 당시의 양광 조서로 입증된다. 양광은 “고구려의 작은 무리들이 혼미하고 공손하지 못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에 모여 들면서 요(遼) 예(濊)의 경계를 자주 잠식하였다.”라고 하므로, 갈석산이 낭아산이고, 요수가 당하이고, 예가 황하 어귀 해안가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는 본고의 위치비정과 양광의 언급은 일치한다. 양광은 “발해를 덮어 우레와 같이 진동하고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