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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고사 주요 보완 내용 (7) - 강단·일제유사사학의 열도와 한반도 남부 고대사 창작 (1)

1. 일본(열도백제)을 야마토왜로 날조 열도에서도 왜(예)계는 피지배민에 불과하였다왜는 강어귀로 간 우리 민족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강역에 살았던 이들은 백제와 고구려인이 되었고, 석탈해 세력은 신라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어업을 주로 한 왜(예)인들이 열도로 먼저 이주하여 열도의 지역명이 왜로 되었다. 전술하였듯이 왜계 세력이 열도를 지배한 적은 없다. 백제 멸망 후, 신라와 당에 점령 당하지 않은 열도의 백제인들이, 국호를 백제의 별칭이었던 일본으로 하면서, 일본국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신라와 대진의 간섭기가 끝난 후 독립하여 우리의 역사에서 이탈하였다. 8세기까지 한국말을 하였고 한국옷을 입었던 열도의 고대사는 우리의 고대사이다.  「일본서기」에서 야마토왜는 일본의 지방명이나 속국이다일제유사사학은 일..

역사 2025.04.05

한상고사 주요 보완 내용 (6) - 고구려 연호의 변동

13. 고구려 연호의 변동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북경부터 요양까지 고구려 유물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되었다. 모택동 등 공산당 지도부도 요하 동쪽부터는 조선이라 생각했으나, 그러한 생각과 달리 본고의 주장처럼 북경부터 고구려 영토인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래서 중국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역사 날조를 시작했다. 북경부터 요양까지의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분묘를 서진이나 삼연(전연, 후연, 북연)의 묘로 날조했다. 서진과 삼연은 영정하 이남에 있었으므로 영정하 이북의 고구려 영토에 이들의 분묘가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조양의 분묘는 도굴범이 벽화를 불태웠다고 사기 친다. 벽화가 고구려 벽화와 완전히 같거나 벽화에 있는 글자가 고구려의 것임을 증명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벽화를 태웠을 것이다..

역사 2025.03.25

한상고사 주요 보완 내용 (5) - 고구려 왕통의 변동

11. 고구려 왕통의 변동 (1) 해씨에서 고씨로의 변동 서진 태강 연간에 쓰여진 『삼국지』는 “고구려의 왕이 본래는 연노부(涓奴部)에서 나왔으나 점점 미약해져서 지금은 계루부(桂婁部)에서 나온다”고 하며, 『후한서』 「동이열전」도 “왕이 본래는 소노부(消奴部)에서 나왔으나 점점 미약해져서 뒤에는 계루부에서 나온다”고 한다. 『삼국사』는 “부여가 항복하니 연나부(掾那部)에 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연나부가 왕의 부였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따라서 『후한서』의 소노부보다는 『삼국지』의 연노부가 타당하다고 보인다. 이에 대해 강단유사사학은 송양(松讓)의 ‘양(讓)’이 ‘노(奴)’ 혹은 ‘나(那)’와 통한다고 여겨, 이를 특정 왕의 이름이 아니라 소노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주몽이 송양과 다퉈 승리하는 일화..

역사 2025.03.24

개돼지가 정치하면 생기는 일

불난 빌라, 사람 구했더니 “수리비 달라”…시, 배상하기로입력2025.02.24. 오후 5:19 수정2025.02.24. 오후 5:21 기사원문​불이 난 빌라에서 소방관들이 인명 수색을 위해 현관문을 강제 개방했다가 주민들로부터 배상 요구를 받은 사건과 관련해 광주시가 수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24일 광주소방본부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11일 불이 났던 빌라 6세대의 현관문과 잠금장치 수리비 500여만원에 대한 손실보상위원회를 소집해 강제 개방으로 파손된 현관문 수리비를 배상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을 수용하기로 의결했다.​이번 보상 의결로 올해 손실 보상액으로 확보한 예산 1000만원이 부족하다면 추가경정예산 심의 등을 통해 재원을 추가 확보할지도 검토할 계획이다.​앞서 지난 1월 11일 광주 북구 신안..

시사 2025.02.25

한상고사 주요 보완 내용 (4) - 왕건은 천주(泉州)의 실력자였던 왕봉규

(3) 고려와 백제유민 왕건의 집안은 백제유민왕건의 증조부는 753년 패강(浿江)의 서쪽 나루터에 와서, 배 안에서 돈을 꺼내어 뿌리고 상륙하였다. 그는 왕건의 증조모에게 자신이 당나라의 귀인이라 말하고 떠나갔다. 당귀인이 당나라에서 왔으며 배에 돈을 싣고 다녔다는 것은 그가 중국 동해안에 근거지를 둔 백제유민 무역상임을 의미한다. 『고려사』가 인용한 『편년통감』과 『편년강목』은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왕건의 증조부를 당 숙종이나 선종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건의 조부가 唐父를 만나러 상선(商船)에 의탁하여 바다로 갔으며, 왕건 집안의 근거지가 예성강변의 개성이었고, 왕건은 903년 수군으로 나주를 점령하였고, 909년에는 견훤이 오월국으로 보내는 배를 사로잡았고, 909년 진도를 점령하였고, 912년..

역사 2025.02.19

한 상고사 주요 보완 내용 (3) - 백제 수도의 변동

(10) 백제 수도의 변동 서울에 근초고왕릉만 있는 이유전술한 바와 같이 소서노의 위례성(미추홀)이 BCE 18년 건국 시 도읍지이고, BCE 5년 온조의 찬탈 시 온조의 위례성(서도 한성)이 두번째 수도이다. 두 위례성은 모두 황하 동쪽 제수 북쪽의 韓에 있었다. 그 후 문주왕이 韓의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근초고왕이 동도 한성으로 수도를 옮긴 시기를 제외하고는 서도 한성이 백제의 수도였다. 서울에 근초고왕릉만 있는 것은 서울이 근초고왕 시기에만 백제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문주왕이 천도한 웅진은 황하 동쪽문주왕이 475년 천도한 웅진은 韓의 웅진이다. 문주왕은 천도 이듬해인 476년 대두산성을 수리하고 한수 북쪽의 백성을 이주시켰는데, 대두산성은 온조왕이 마한을 CE 8년 멸망시킨 직후인 CE 9..

역사 2025.02.17

한 상고사 주요 보완 내용 (2) - 4세기 전반 고구려의 중국 영토 탈취설

(5) 4세기 전반 고구려의 중국 영토 탈취설 중제·일제·강단유사사학이 사기 쳐야만 하는 이유강단유사사학은 4세기 전반기에, 평양에 있던 낙랑군과 황해도에 있던 대방군을 고구려가 차지하였고, 낙랑군과 대방군은 한반도에서 요서 지역으로 이동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를 낙랑군과 대방군의 교치라 한다. 강단유사사학이 한국인이라면 ‘고구려의 영토 확장’이라 할 것이다. ‘낙랑군 교치’라는 말은 중국 역사학자가 하는 말이다. 강단유사사학은 그들의 사기질을 숨기기 위해 ‘낙랑군 교치’라는 어려운 중국말을 한다. 소위 낙랑군 교치설은 낙랑군 평양설을 지키기 위한, 더욱 치졸한 거짓말이다. 조선총독부는 낙랑군과 대방군을 대동강 남쪽과 황해도에 가져다 놓았는데,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경우 뒤의 역사와 이어지지 않기 ..

역사 2025.02.15

한 상고사 주요 개정내용 (1)- 고구려 연호의 변동

13. 고구려 연호의 변동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북경부터 요양까지 고구려 유물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되었다. 모택동 등 공산당 지도부도 요하 동쪽부터는 조선이라 생각했으나, 그러한 생각과 달리 본고의 주장처럼 북경부터 고구려 영토인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래서 중국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역사 날조를 시작했다. 북경부터 요양까지의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분묘를 서진이나 삼연(전연, 후연, 북연)의 묘로 날조했다. 서진과 삼연은 영정하 이남에 있었으므로 영정하 이북의 고구려 영토에 이들의 분묘가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조양의 분묘는 도굴범이 벽화를 불태웠다고 사기 친다. 벽화가 고구려 벽화와 완전히 같거나 벽화에 있는 글자가 고구려의 것임을 증명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벽화를 태웠을 것이..

역사 2025.02.14

어린 초등학생을 죽인 제도

대전에서 초등학생이 선생에 의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고용주들에 해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은 더 해고하기 어렵다. 실제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공무원이 있어도 해고당하지 않는다. ​고용주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위법한 해고만 금지하면 되는데, 실제는 해고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특히 공무원은 지 돈 들어가지 않으니 해고의 책임을 떠맡으려는 사람이 없다. 해고를 해도 부당해고라 하면서 법원에 제소하면 법원이 정당한 해고사유는 보지 않고 부당해고라 판결한다. 판새가 개새끼들이다. ​선생이라는 역할을 할 수 없는 사람은 당연히 해고했어야 하는데 개돼지들이 지 편하자고 해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무원이건 사기업이건 고용주에게 해고의 자유를 폭넓게 주어야 한다. ..

시사 2025.02.11

표현의 자유와 개돼지 사회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독재자나 범죄자의 나쁜 짓을 알려 독재나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전으로 표현의 자유가 사회를 개돼지화하고 있다. ​인터넷에선 조회수가 중요하다. 평범한 상식을 말하면 조회수가 높아지지 않는다. 조회수가 높아지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이상한 것만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한 쪽에서 일본의 식민 통치가 한국을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다른 쪽에선 성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이 사회를 바꾸기 전에는 정당이 같아진다고 걱정했다. 수가 많은 중간층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 이후에는 중간층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중간층을 목표로 하는 표현물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사 202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