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가 우문옹(무제) 시 요동에 침입하였는데, 배산(拜山)의 벌판에서 온달의 활약으로 크게 이겼다. 위가 북제와 북주로 나뉘고 북주가 577년 북제를 멸한 후 고구려와 경계를 마주하여 북주가 침입하였다. 『태백일사』는 갈석산과 배찰산에 가서 토벌하고 유림관까지 추격했다고 하며, 유림은 산서성과의 경계라 한다. 배산의 벌판은 갈석산에서 남쪽으로 더 간 배찰산 부근, 보정시 남쪽의 벌판으로 추정된다. 유림관은 임유관의 다른 명칭으로 추정되며, 산서성과의 경계이므로 보정시 남쪽에서 서쪽으로 산서성으로 가는 도정의 태행산맥에 있는 관으로 추정된다. 북주나 수는, 상곡은 고구려의 영토이므로 상곡과 거용관으로 나올 수 없고, 거용관에서 직선거리로 50km 남쪽의 임유관을 통해 요동으로 나와 고구려의 남쪽 지역을 침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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