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견(수문제)이 597년 “王은 遼水의 폭이 長江과 어떠하며, 高麗의 인구가 陳國과 어떠하다고 보는가?” 하면서 고구려를 위협하는 문서를 보내자, 고구려는 598년 濊 군사 일만으로 요서(당하 상류 남부)를 공격하였다. 濊병은 황하 하류 예인이나 예부여의 예인이다. 고구려의 공격에 영주총관 위충이 대응하자 후퇴하였다. 양견은 예상치 못한 고구려의 치고 빠지기에 당황하고 분노하여,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서둘러서 6월 양량과 왕세적을 장군으로 30만을 임유관을 통해 고구려로 보내고, 식량은 배로 황하로 보내려고 하였는데 강이식은 이를 눈치채고 보급선을 파괴하고 성을 지키면서 시간을 끌자 수의 병사들은 굶주려 병에 걸리는 상태가 되었다. 9월 수군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후퇴하자, 고구려군은 임유관까지 추격하여 수군을 대부분 몰살시켰다. 이후 양견은 고구려와 전쟁하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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