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우리나라 강단 역사학계는 매국세력의 본부

역사회복 2023. 2. 13. 05:27
  1. 일제 부역자들 승계

해방 후, 미국과 이승만은 각각 남한 내 확실한 반공정권 수립과 집권을 위해 일제 부역자와 협력하였다. 일제의 한국사 날조에 부역한 일제유사사학의 승계자들이 해방 후에도 학문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제에 대한 부역을 학문연구로 위장하였다. 날조를 실증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날조된 사실이 객관적 학문연구의 성과인 것처럼 왜곡하여 그들의 부역 사실을 은폐하였다. 날조된 사실이 학문연구의 대상이 되는 순간 부역자로서의 정체성이 공개되므로 그들은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았다.

객관적 연구는 투명인간의 투명논문인 것처럼 왕따시켰다. 최재석, 신용하, 김석형, 김성호 등의 연구에 무시로 일관하였다. 학문이 아니라 교리가 된 것이다. 날조된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 날조를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학문권력의 승계자로 육성하였다. 더 무식하게 더 극렬하게 날조를 옹호할수록 교수지위와 출세가 보장되었다. 우리 역사를 기술해야 할 학문권력이 일제의 날조를 유지 강화시키는 도구로 전락되어, 우리 역사는 일제의 150년(1870년-현재) 지배가 이어지고 있다.

2. 좌우가 따로 없는 매국역사학

우리 역사와 관련하여 특이한 사실은 일제 부역자를 승계한 집단에 소위 진보, 명칭으로는 일제 부역자를 가장 증오해야 할 집단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제 부역자와 그 승계세력이 날조한 역사를 배우고 자란 소위 80년대 운동권은 사회주의와 날조 역사를 동시에 받아들인다. 그들은 강단유사사학을 역사학으로 생각하고 그에 반대하면 유사역사학이라 칭한다. 그들은 그들이 자주 쓰는 용어인 비판적 시각을 일제가 날조한 역사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날조 우파와 날조 좌파는 고대사 날조에서 완전히 뜻을 같이 한다. 2019년 4월 문재인 정부에서 독립기념관의 제19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에 임명된 신주백은 2018년 6월 『동방학지』에, 일제유사사학의 중요 일원인 쓰에마쓰의 한국사날조가 매우 실증적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그 글에서 그는 고대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쓰에마쓰가 매우 실증적으로 야마토임나설을 입증했다고 주장한다. 야마토임나설에 관한 논쟁은 야마토임나설이나 그 아류인 강단유사사학의 주장에 실증이 있는가이다. 일제유사사학은 증거가 아닌 것을 증거라 하고, 실증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쓰에마쓰가 제시하는 증거는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전혀 증거가 안 되고, 임나를 열도 내 한반도 이주민의 소국 중의 하나로 보는 것의 증거가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실증 여부가 논쟁의 핵심인데 신주백은 알지도 못한다면서 일제유사사학의 핵심 인사라 할 수 있는 쓰에마쓰가 실증을 엄밀히 했다고 환호한다. 더구나 쓰에마쓰의 야마토임나설은 그 승계자인 강단유사사학의 아류 야마토임나설에서조차도 실증에 문제가 있다 하여, 수정되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에 임명되었고, 봉오동전투의 실제 지휘자를 민족주의자 최진동 최운산 형제가 아닌 소련에 가서 공산주의자가 되어 독립투쟁을 중단한 홍범도라 날조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소위 진보로 보인다. 즉 날조 좌파의 고대사 인식은 날조 우파와 눈꼽 만큼의 차이도 없다. 진보잡지를 표방하는 『역사비평』이 강단유사사학의 고대사 날조를 극렬하게 지지하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근대사 인식에서도 날조 좌파와 날조 우파의 차이는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평가 등 극히 일부에 그친다. 반병률은 레닌이 임시정부로 보낸 자금이 한인사회당의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레닌자금을 임정에 전달하지 않은 김립을 처단한 임시정부의 공권력행위를 김구의 테러라 규정하는데 테러라는 말은 날조 우파가 김구에 대해 사용하는 바로 그 용어이다. 신주백은 독도의 역사적 소유권과 현실적 통치권 사이 괴리가 있다고 즉 역사적으로 독도는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날조 우파와 조금도 차이가 없다. 소위 ‘위안부’ 관련 박유하 문제에서도 날조좌파와 날조우파는 뜻을 같이하여 박유하의 처벌을 반대한다. 권희영이 ‘진보’가 좋아하고 숭배해야 마땅할 무정부주의자 신채호를 ‘또라이’ ‘정신병자’라 비난했다는 것이 알려져도 ‘진보’는 조용하다.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일제유사사학의 승계자들은 모두 강단유사사학이다.

3. 그들이 주장하는 실증의 정체

군사작전으로 시작되어 식민통치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고안된 강단유사사학과 그 원조인 일제유사사학의 역사엔 실증이 전혀 없다.

그들이 근거라 제시하는 것은 음소 하나만 같으면 두서너자의 지명을 같은 것으로 우기는 것, 그들의 주장이 오류라 입증하는 신뢰성 있는 1차 사료를 조작이라고 하거나 오자라고 우기는 것, 한문 해독능력이 없어서 또는 조작을 위해 1차 사료를 고의로 오독하여 사료의 원문과 다른 내용을 주장하면서 이를 맞다고 우기는 것, 조작된 유물을 증거라고 우기는 것, 그들 주장에 대한 증거가 전혀 될 수 없는 유적이나 유물을 증거라고 우기는 것, 다른 여러 자료에 의해 오류로 입증된 사료를 맞다고 우기는 것, 대중이 조작 눈치 채지 못하게 괜히 어려운 말로 횡설수설하는 것, 어떤 근거도 없이 지역이나 나라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고 우기는 것, 그래도 할 말 없으면 이미 논의가 끝난 사항이라고 묵언수행 하는 것 등이다.

 

그들 주장 대부분이 날조이나, 가장 대표적인 날조가 임나가 가야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가' 일본에서 가야를 임나로 불렀다는 것이다. 전혀 근거가 없기 때문에 소설에서도 쓰지 않을 '무슨 이유에선가'를 근거라고 제시한다. 그마저도 가야는 6세기 중엽에 망하는데, 일본서기에서 임나는 7세기 중엽까지 등장하므로 가야가 임나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일본서기에는 왜가 일본의 속국으로 나오며 일본은 백제의 별칭이므로 일본서기는 열도가 백제의 영토였고 백제가 왜를 다스렸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일제와 강단유사사학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왜가 열도를 지배했고 한반도로 진출했다는 거짓말을 하며 이를 위해 임나가 가야라는 허무맹랑한 소설을 유포하고 있다.

그들은 실증에 의해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아니라 실증과는 무관하게 일제유사사학의 교시를 되풀이하는 앵무새이다. 강단유사사학은 일제·중제유사사학에 대한 충성을 실증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그것들과 그것들에 충성하는 강단유사사학이 마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작업을 하는 생명체들인 것처럼 대중을 속인다. 그러나 일제 중제 강단의 세 유사사학에 실증은 전혀 없다. 그들이 만든 소설을 전제하고 실증을 찾는 것처럼 사기를 치고 있을 뿐이다.

일제·중제·강단유사사학에는 전혀 실증이 없음에도, 강단유사사학의 생명체들이 이들 유사사학이 실증적이라고 떠드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사사학을 실증적 역사학으로 날조하는 모조품 판매 카르텔의 수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