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강단유사사학의 불교 전래에 관한 사기 번역

역사회복 2024. 6. 8. 06:15

『삼국유사』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삼국유사』 「塔像第四」 金官虎溪寺婆娑石塔者昔此邑爲金官國時, 世祖首露王之妃許皇后名黄玉, 以東漢建武二十四年甲申, 自西域阿踰陁國所載來. --- 首露王聘迎之, 同御國一百五十餘年. 然于時海東未有創寺奉法之事. 蓋像敎未至. 而圡人不信伏. 故本記無創寺之文.

금관(金官)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婆裟石塔)이라는 것은 옛날에 이 읍이 금관국이었을 때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비인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무신에 서역의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싣고 온 것이다. --- 수로왕이 그를 맞이하고 함께 나라를 다스린 것이 150여 년이었다. 그러나 이때에 해동에 절을 세워 불법을 받드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대승불교(像敎) 이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토착인들은 신복하지 않았다. 따라서 본기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

강단유사사학은 『삼국유사』 「금관성파사석탑」조의 ‘像敎’를 대승불교가 아닌 불교로 고의로 오역하여 불교가 전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초기 불교는 부처의 모습을 만들지 않았다. 따라서 像敎는 불상을 만들어 예배를 보는 대승불교를 의미한다. 일연은 허씨집단이 파사석탑을 가져왔으므로 그들과 함께 당연히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전제하고, 절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강단유사사학은 이를 불교가 전래되지 않았다고 날조한다. 이들은 이 문장에 나오는 然, 蓋, 像敎를 해석하지 않거나 오역하고, 전혀 문맥에 맞지 않는 해석으로, 그들의 뛰어난 문학성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