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유사사학은 가야에 대해선 철저히 『삼국사』와 『삼국유사』를 무시하고 가야=임나라고 소설을 쓰면서 「일본서기」의 임나를 가야라고 우기다가, 갑자기 가야의 멸망에 대해선, ‘가야의 반란’이라는 문언은 무시하지만, 『삼국사』와 『삼국유사』를 참고하여 562년에 가야가 망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562년 이후에도 신라와 전쟁을 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임나가 7세기 중반까지 꾸준히 등장하는데, 그들도 7세기까지 임나를 한반도에 존치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꼈는지, 태세전환하여 562년 임나(가야)가 망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가야가 망한 후에도 「일본서기」에 왜 임나가 나오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선생님들이 교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제의 소설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실증하기 위해 총독부 교시의 결함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실증주의는 조선총독부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실증하는 것을 의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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