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리고분 묵서명에서 후연 유주의 치소였던 광계와 후연의 수도였던 용성이 낙양에서 2300리라 한다. 즉 광계와 연국은 현재의 보정시 부근이다.
고구려는 후연을 정복하고 후연 남부에는 북연을 설치하여 위와의 완충지대를 만들었고, 서진의 유주와 평주 즉 당하에서 영정하까지의 후연 영토엔 고구려의 유주를 설치하여 영토화 하였다. 고구려 멸망 시까지 동성왕에게 탈취당한 시간 이외에는 이 영토를 유지하였고, 문자명왕 시에는 백제의 韓 지역까지 정복하였다.
강단사기꾼들은 평주의 낙랑군이 지금 평양이라 하는데, 서진의 유주 남쪽이 서진의 평주이고 평주에 낙랑군과 대방군이 있었다. 즉 낙랑군과 대방군은 낙양에서 2300리를 넘지 못한다. 지금 평양과 황해도는 낙양에서 5천리가 넘는다. 그들이 교치했다고 주장하는 요서 어딘가도 2300리를 훨씬 넘는다.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사기꾼들은 지금 평양이 낙랑군이고 황해도가 대방군이라 하였다가 어딘가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기록한 무덤의 묵서명을 조선총독부의 소설로 부정하면서 일제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다.
매국노에 굴종하여 교수가 되고 박물관 등에 취직을 한 강단사기꾼들은 지들 이익이라도 있어서 그러는 것이지만, 그것들을 옹호하면서 지식인인 체 하는 것들은 정상이 아니어서 병원에 가봐야 할 생명체로 볼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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