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유사사학은 단동에서 발굴된 기와에 ‘安平樂未央(평안함과 즐거움이 다하지 않기를)’이라는 문구가 발견되기 때문에 단동을 서안평이라고 하면서, '서안평에서의 즐거움이 다하지 않기를' 이라는 의미라 주장한다.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7_0040_0010_0090_0020]
기와의 길상구를 지명으로 전환하는 유사사학자들의 천재성은 유사역사학계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강단유사사학은 여대(旅大)에서 출토된, ‘長樂未央’명 와당에선 여대를 장이라는 도시로 보지 않고, 長樂未央(늘 즐거움이 다하지 않기를) 전체를 길상구로 본다.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7_0040_0010_0110_0020]
여기에서 자신들은 바보가 되더라도 조선총독부 소설은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조선총독부 소설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엿볼 수 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단의 永和十三年 사기질 (사마담에게 고마운 이유) (2) | 2024.06.03 |
---|---|
州治廣薊今治燕國去洛陽二千三百(주 치소 광계와 지금 치소 연국은 낙양에서 2300리이다) (2) | 2024.06.02 |
후한의 고구려에 대한 조공 중단 후 (2) | 2024.06.01 |
살수대첩의 살수는 연태하 (0) | 2024.05.31 |
비류백제=예부여의 역사 (2) | 2024.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