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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학술지 역사비평사에 이의신청서 제출

일제 잔재 선전지인 역사비평이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확실합니다만 이의신청을 통한 그들의 답변에서 그들이 유사학술지임을 자백하게 될 것이므로 이의신청을 하였습니다. ​ --------------------- 저는 역사비평사가 일제 간첩들을 위한 학술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의신청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도 해방 후 이승만이 매국노들의 앞잡이가 되어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일제 잔재들을 추종한 사람만이 역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저의 글에 대한 심사자는 일제 잔재들입니다. 일제 잔재 논의를 떠나서도 기존의 견해와 다르다고 하여 무조건 게재를 거부하는 것도 학술지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제 견해가 말이 안 된다면 다른 반박문을 통해서 저를 망신 주면 될 것입니다. 심..

역사 2024.02.03

역사비평사 사기꾼들의 심사문(게재거부) 공개('요동반도 백제와 대동강 원산만 선의 허구성'에 대한 심사문임)

2024년 1월 초에 투고한 다음 글에 대한 그들의 심사문입니다. https://taxecolaw.tistory.com/258 요동반도 백제와 대동강 원산만 선의 허구성 이 글은 역사비평사에 투고된 글입니다. 한글에서 복붙했더니 주는 다 지워졌습니다. 역사비평사는 이 글을 거부할 것입니다. 거부하면서 나타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기성을 드러내기 위해 taxecolaw.tistory.com ​ 게재거부통지에 대해 반론하겠습니다. 심사자 1 ㅇ 󰡔사기정의󰡕 하본기 주석 이외에 󰡔사기󰡕권1 「오제본기」의 주석과 󰡔한원󰡕에서 인용된 괄지지에는 ‘발해’라는 단어가 빠져 있으므로 요동반도가 백제 영토였다는 것은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 ㅇ 반론: 괄지지의 ‘발해’라는 문구가 없어도 요동반도 백제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역사 2024.02.02

4세기 전반기에 고구려가 중국의 영토를 뺏었는가?

소위 낙랑군 교치는 조선총독부의 소설 조선총독부를 승계한 강단은 4세기 전반기에, 평양에 있던 낙랑군과 황해도에 있던 대방군을 고구려가 차지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하는 말로는 낙랑군과 대방군의 교치이다. ​ 조선총독부는 낙랑군과 대방군을 대동강 남쪽과 황해도에 가져다 놓았는데,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경우 뒤의 역사와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없애야 했다. 그래서 찾다찾다 찾은 근거가 삼국사기 313년 10월 미천왕의 낙랑군 공격 기사, 314년 9월의 대방군 공격 기사, 313년 4월 이전 어느 시점이라 기술된 자치통감 장통의 모용외로의 귀부 기사이다. 그런데 장통의 귀부가 미천왕의 공격보다 더 이른 시기여서 말이 맞지 않는다. 또 삼국사기의 기사는 점령 기사가 아니고 공격 기사이며 포로를 잡아 귀환했음..

역사 2024.01.28

낙랑군은 처음부터 보정시에 있었고 313년에 이동한 적도 없다 (이정빈에 대한 반론)

1. 서 본고는 이정빈의 논문에 대한 반론이다. 이정빈은 낙랑군이 4세기 전반 대동강 유역에서 요서 지역으로 교치되었고, 5세기 전반 요서 지역에서 난하 유역으로 교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엔 근거가 전혀 없다. 낙랑군은 대동강 남쪽에도, 그가 말한 요서에도, 난하 유역에도 있었던 적이 없다. 그의 주장엔 전근대적 방법으로 역사를 추정하였던 18세기인들이 주장하고 일제가 불순한 목적으로 계승한 낙랑군 평양설에 대한 맹목적 추종만이 있다. 이문영은 「유사역사학 비판」이라는 책에서 로버트 캐롤과 로널드 프리츠를 인용하여, 유사역사학은 사료나 증거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며 개연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에 주목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이정빈은 유사사학임..

역사 2024.01.27

4세기 말 5세기 초의 삼국관계, 왜의 실체

백제가 371년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후 고구려와 백제는 심각하게 대립한다. ​ 373년 백제 독산성주가 300명을 거느리고 신라에 투항하였는데, 신라가 이들을 돌려 보내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377년에 고구려(삼국사기)와 신라(자치통감)는 전진에 사신을 파견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중에서 더 강한 고구려와 동맹한 것으로 보인다. ​ 삼국사기에 의하면 381년 부견은 신라 사신에게 "해동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라고 물었는데, 이는 고구려와 신라가 동맹하여 백제와 대립한 것을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 391년에는 고구려가 실성을 볼모로 삼았고, 서봉총 은합에서 보이듯이 391년 고구려의 제사에 신라 사신이 참석하며, 397년 충주 고구려비에서 보이듯이 고구..

역사 202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