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비평사 사기꾼들의 심사문(게재거부) 공개('요동반도 백제와 대동강 원산만 선의 허구성'에 대한 심사문임)

역사회복 2024. 2. 2. 19:44

2024년 1월 초에 투고한 다음 글에 대한 그들의 심사문입니다.

 

 

https://taxecolaw.tistory.com/258

 

요동반도 백제와 대동강 원산만 선의 허구성

이 글은 역사비평사에 투고된 글입니다. 한글에서 복붙했더니 주는 다 지워졌습니다. 역사비평사는 이 글을 거부할 것입니다. 거부하면서 나타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기성을 드러내기 위해

taxecolaw.tistory.com

 

 

게재거부통지에 대해 반론하겠습니다.

 

심사자 1

 

󰡔사기정의󰡕 하본기 주석 이외에 󰡔사기󰡕권1 「오제본기」의 주석과 󰡔한원󰡕에서 인용된 괄지지에는 ‘발해’라는 단어가 빠져 있으므로 요동반도가 백제 영토였다는 것은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

 

ㅇ 반론: 괄지지의 ‘발해’라는 문구가 없어도 요동반도 백제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 신당서 구당서 통전 등이 백제 땅을 신라와 발해가 나누어가졌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심사자1의 말에 의하면 전라도 서남쪽에 섬들이 있으므로 전라도 일부를 발해가 가져야 합니다.

 

 

심사자 2

 

ㅇ 신라는 671년에야 백제 지역을 사실상 평정했고, 부여융은 675년 무렵 당으로 돌아갔고, 676년 당은 한반도 사비에 있던 웅진도독부를 요동의 건안고성으로 옮기고 백성 중 서주 연주로 옮겼던 자들도 건안으로 옮겼다. 요동의 건안고성은 원래 백제의 영토가 아니었기 때문에 백제의 백성들을 이주시킨 것이다. 건안의 웅진도독부는 백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백제 땅이 아니다.

 

ㅇ 반론:

필자는 한반도백제가 665년 이전에 평정되었음을 사료로 밝혔습니다. 671년 신라가 사실상 평정한 지역은 요동반도백제임을 주장하였습니다. 676년 옮겨진 웅진도독부는 요동반도백제에 있던 것이고, 요동의 건안고성은 하북성 중부 역수 부근으로 심사자가 말하듯이 원래 백제의 영토가 아닙니다. 심사자는 당시의 요동과 현재의 요동을 혼동하고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서주 연주로 이주시켰던 백제인은 한반도 백제를 멸하면서 끌고간 사람들입니다.

제 주장의 핵심 요지의 하나인 한반도 백제가 평정된 후 언제 되살아났는가에 대한 반론은 전혀 없습니다. 심사자는 63곳은 아무 것도 아니라 하는데, 63곳은 심사자가 말하듯이 사실상 평정한 후에 남아 있는 성의 숫자에 불과합니다. 완전히 평정되어 당군이 철수하고 부여융도 도망갔던 한반도 백제에 왜 다시 신라가 군사력을 통해서만 점령할 수 있는 땅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못하고 있습니다.

 

 

심사자 3

 

ㅇ “괄지지”를 인용한 “사기정의”에서 “百濟國西南渤海中有大島十五所,皆邑落有人居,屬百濟.”라는 문장에 이어서 또 왜국은 고쳐서 ‘일본’이라고 하는데, 백제 남쪽에 있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에 의지하여 살며, 무릇 백여 소국이 있다. 이것이 모두 양주 동쪽의 섬오랑캐이다.(百濟國西南渤海中 有大島十五所 皆邑落 有人居 屬百濟 又倭國改曰日本 在百濟南 隔海依島而居 凡百餘小國 此皆揚州之東島夷也).

 

여기 등장하는 양주(揚州)는 지금의 강소성 중부에 있는 도시이다. 결국 “사기정의”에서 이야기하는 양주 동쪽의 섬 오랑캐들은 ‘백제 서남쪽의 15개 섬과 왜의 여러 섬’를 말한다. 이러한 서술 내용은 한반도 서남부에 존재하는 백제와 또 그 남쪽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의 지리적 관계로 이해하는 게 합리적이다.

 

ㅇ 반론

- 당시 중국인들은 왜 종족과 왜 지역(열도 지역)을 혼동하고 있었습니다. 심사자가 말한 양주 동쪽은 양자강 하구 일대로 고대로부터 왜 종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양자강 어귀의 왜는 『사기』 「오태백 세가」와 「월왕구천 세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조, 『梁書』 「동이전」 왜국조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왜국은 고쳐서 ‘일본’이라고 하는데, 백제 남쪽에 있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에 의지하여 산다”는 말은 열도 지역이 백제 지배 하에 있다가 일본으로 독립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무릇 백여 소국이 있다”는 말은 삼국지의 기록을 인용한 것으로 당시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사기정의는 백제와 왜국을 분리하여 말하고 있는데, 왜국을 말한 것이 양자강 하구와, 열도를 의미한다고, 백제를 언급한 것이 한반도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황당하여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심사자3은 심사자2처럼 요동의 건안이 어딘지도 모르고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요동 건안고성이 백제의 영토였다고 주장한 사실이 없습니다. 요동반도는 당시에는 요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기초 상식도 없는 사람이 일제의 소설을 달달 외어 역사학과 교수가 되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암담합니다.

 

- 심사자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사료의 부족, 고고학 증거의 부재를 말하고 있는데, 고고학 증거가 없다고 사료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 유사사학계가 유일할 것입니다. 심사자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선 사료의 부실을 말하고 있는데, 완전히 평정된 한반도가 신라가 정벌하여야 할 정도로 신라에서 이탈한 것에 대해선, 대동강 원산만 선에 대해선 무슨 사료와 고고학 증거가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심사자는 현재 평양에서 유적 유물이 발굴되니 고구려의 수도라 하는데, 평양은 고구려 삼경의 하나인 한성입니다. 삼경의 하나에서 유적 유물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하고, 한성이라는 각자성석이 발견되었으므로 현 평양은 고구려 수도인 평양(요양)이  아닙니다. 요양에 언제 고고학 조사를 했나요? 고고학 유적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이 역사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 불행한 나라입니다.

 

- 심사자는 투고자를 과대망상에 가까운 편집증적 사고자라 하고 있는데 심사문이 심사자의 정신병적 일제 소설 편집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심사자 1과 3은 괄지지에 대해서 헛소리를 하고 있고, 괄지지와 괄지지 이외의 사료를 통합하여 해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사자 2와 3은 요동반도에 있던 웅진도독부가 당시 요동군의 건안고성으로 옮겨진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필자가 건안고성의 웅진도독부 있던 자리를 요동반도백제였다 주장한다고 오해하여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요동의 건안 고성은 발해가 차지한 적도 없습니다.

 

심사자 모두 완정히 평정되어 당군도 철수하고 부여융도 도망간 한반도 백제가 언제 신라로부터 이탈하였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당전쟁의 전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대동강 원산만 선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못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논문은 대동강 원산만 선에 대한 비판만으로도 학술적 가치가 있습니다. 괄지지의 기록, 신당전쟁의 전장, 대동강 원산만 선의 허구성 이 셋이 수미일관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