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23

이문영의 요동반도백제에 대한 반응

이문영 블로그http://orumi.egloos.com/에 요동반도는 백제 땅이었다고 했더니[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5.요동반도 백제) 내용 제시] 이문영이 다음과 같은 말을 적고 저를 차단했습니다. ​ ----------------------- 어떤 바보가 백제가 요동반도에 있다는 썰을 달아놓았기에 차단 삭제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변함이 없네요. 자기 해석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사료들만 모아다가 봐라, 맞지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기 낚이는 사람들이 우와, 증거가 이렇게 많아라고 말하게 되죠. 그러면 자기 주장이 사실이 된 것처럼 우쭐해지고요. 백제 서쪽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저 멀리서 남의 나라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쓴 책보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삼국사기에 자세히 나오니까 그렇..

역사 2023.03.08

고려와 백제유민

김성호, 『중국 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 제1부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함 ​ 왕건의 증조부는 753년 패강(浿江)의 서쪽 나루터에 와서, 배 안에서 돈을 꺼내어 뿌리고 상륙하였다. 『고려사』 「고려세계」 唐肅宗皇帝潛邸時, 欲遍遊山川, 以明皇天寶十二載癸巳春, 涉海到浿江西浦. 方潮退, 江渚泥淖, 從官取舟中錢, 布之, 乃登岸. 後名其浦爲錢浦 ​ 그는 왕건의 증조모에게 자신이 당나라의 귀인이라 말하고 떠나갔다. 『고려사』 「고려세계」 我是大唐貴姓 당귀인이 당나라에서 왔으며 배에 돈을 싣고 다녔다는 것은 그가 중국 동해안에 근거지를 둔 백제유민 무역상임을 의미한다. 김성호, 『중국 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 1』, 맑은소리, 1996. 214쪽. ​ 『고려사』가 인용한 『편년통감』과 『편년강목』은 왕..

역사 2023.03.08

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8.대만은 백제 영토였다)

1. 사료 ​ ㅇ 『수서』 「동이열전」 백제조 ​ 平陳之歲(589년), 有一戰船漂至海東牟羅國, 其船得還, 經于百濟, 昌資送之甚厚, 幷遣使奉表賀平陳 “陳을 평정한 해에 어떤 戰船 한척이 표류하여 바다 동쪽의 타모라국(𨈭牟羅國)에 닿았다. 그 배가 돌아올 적에 百濟를 경유하니, 昌이 필수품을 매우 후하게 주어 보냈다. 아울러 使臣을 보내어 表文을 올려 陳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 其南海行三月, 有𨈭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麞鹿, 附庸於百濟. “그 나라의 남쪽에서 바다로 석달을 가면 타모라국(𨈭牟羅國)이 있는데, 남북으로는 천여리이고 동서로는 수백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많다. 百濟에 附庸되어 있다 ​ ㅇ 『삼국사기』 「백제본기」 위덕왕 36년 (589년) ​ 有一戰舩, 漂至躭牟羅國..

역사 2023.03.07

오월국(吳越國)과 무염선원(無染禪院)

오월국은 절강성에 전류(錢鏐)가 세운 나라이다. 전류는 852년 절강성 임안(臨安)에서 태어나 소금장수를 하다가, 혼란기 관리가 되어 황소의 난을 진압하고 그 공로로 진해군절도사겸윤주자사가 되어 893년 절강지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주경미, 「吳越國과 韓半島의 佛敎文化 交流 新論」, 『역사와경계 106』, 2018. 207쪽. ​ 전류는 907년 후량으로부터 오월왕으로 봉작을 받지만, 893년부터 절강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였고, 주경미, 위 글, 207쪽. ​ 전류의 손자 전홍숙이 978년 북송에 나라를 바쳐 오월국은 사라지게 되었다. 오월국의 영역은 항주와 주산군도 등 백제유민이 가장 많이 활동했던 곳이다. ​ 북경 중국국가도서관에 당무염선원비(唐無染禪院碑)의 탁본이 전해지는데, 주경미, 위 글, ..

역사 2023.03.06

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7.낙랑군 점령국의 변동)

1. 강단유사사학이 주장하는 낙랑군 이동의 소설성 ​ 미천왕이 313년 낙랑군을 314년 대방군을 점령하여 고구려의 영토로 하였고 낙랑군은 어딘가로 이동되었다고 주장하며, 근거로 삼국사기와 자치통감의 다음 기사를 제시한다. ​ (1) 『삼국사기』 「髙句麗本紀」 美川王 十四年, 冬十月, 侵樂悢郡, 虜獲男女二千餘口. 美川王 十五年秋九月 南侵帶方郡. 낙랑군을 침략하여 남녀 2천명을 포로로 잡아왔다, 대방군을 침공했다 ​ 기사에 고구려가 점령했다고 쓰여 있지는 않다. 전혀 근거가 되지 않는다. ​ (2) ​『자치통감』 권88 진기10 효민황제(孝愍皇帝) 상 건흥(建興) 원년 夏,四月 --- 王浚使棗嵩督諸軍屯易水,召段疾陸眷,欲與之共擊石勒。疾陸眷不至,浚怒,以重幣賂拓跋猗盧,並檄慕容廆等共討疾陸眷。猗盧遣右賢王六修將兵會之..

역사 2023.03.05

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6.낙랑군 설치 위치)

1. 사료 ​ 『사기』 「조선열전」 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 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築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屬燕 [朝鮮王 滿은 옛날 燕나라 사람이다. 전 연의 시기에 진정(自) 처음(始)으로,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속하게 함을 경험하였다. 관리를 두고 장새를 쌓으려 하였다. 秦이 燕을 멸한 뒤에는 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浿水에 이르러 경계로 하고 燕에 소속시켰다.]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燕王 盧綰이 漢을 배반하고 匈奴로 들어가자 滿도 망명하였다. 무리 千餘人을 모아 북상투에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새를..

역사 2023.03.04

도미부부가 도망간 천성(泉城)

개루왕(蓋婁王)(128~166년)이 도미의 부인을 취하지 못하자 도미를 눈멀게 하였다. 도미부부는 천성도(泉城島)로 도망갔다. 675년 가을 9월에 설인귀(薛仁貴)가 쳐들어왔다가 패퇴한 곳은 천성(泉城)이다. 설인귀가 해군을 이끌고 온 천성은 『삼국사』 「도미열전」의 도미부부가 배를 타고 온 천성도와 같은 곳이다. ​ 요동반도백제는 서기 22년 이전부터 백제의 영토였는데, 도미부부는 백제 수도(韓지역의 한성)와 요동반도간 자주 있었던 백제의 무역선을 타고 요동반도의 부속도서의 하나인 천성도로 도망갔을 것이다. 요동반도에서도 고구려로 쉽게 갈 수 있으므로 도미부부가 고구려로 갔다는 열전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 강단유사사학은 천성을 한강과 임진강 하구의 어느 지점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한..

역사 2023.03.04

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5)

1. 사료 ​ 『사기정의』가 인용하는 『괄지지』에 “백제국 서남 발해 중에 큰섬 15개가 있는데 모두 읍락이 있고 사람이 거주한다. 백제에 속한다.” 【正義】括地志云:「百濟國西南渤海中有大島十五所,皆邑落有人居,屬百濟。」 ​ 『三國史』 「百濟本紀」 義慈王 麟德二年, 與新羅王㑹熊津城, 刑白馬以盟. 仁軌爲盟辭, 乃作金書鐡契, 藏新羅廟中, 盟辭見新羅紀中. 仁願等還, 隆畏衆㩗散, 亦歸京師. 儀鳳中, 以隆爲熊津都督·帶方郡王, 遣歸國, 安輯餘衆. 仍移安東都護府於新城以統之. 時新羅強, 隆不敢入舊國, 寄理髙句麗死. 武后又以其孫敬襲王, 而其地已爲新羅·渤海靺鞨所分, 國系遂絶. [[당나라] 인덕(麟德) 2년, 융(隆)이 신라 왕과 웅진성에서 만나 흰 말을 잡아 맹세하였다. 인궤가 맹세하는 글을 지었으며, 이것을 금으로 새기고,..

역사 2023.03.03

이사부는 둘이었다

김부식은 이사부가 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이사부 열전을 썼다. ​ 고성이 502년 신라에 점령되었다는 고성김씨 족보의 기록은 성씨뉴스닷컴 (http://www.sungssi.com) (2022.4.29. 현재) “소가야국(小伽倻國)은 건국후 46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소가야국(小伽倻國)제 9대 이형왕(而衡王) 29년 신라(新羅) 지증왕 3년(서기 502년) 신라에 패하여 읍성(邑城)을 내주었다.” 이사부가 지증왕(500-514) 때 가야를 취하였다는 열전의 기록과 『삼국사』 「이사부열전」 智度路王時, 爲㳂邉官. 襲居道權謀, 以馬戲誤加耶 或云加羅國, 取之 [지도로왕 때 연해 변경 지역의 지방관(干)이 되었다. 거도(居道)의 임기응변의 꾀를 답습하여 마희(馬戱)로써 가야국(加耶國) [가야(加耶)는] 혹은..

역사 2023.03.03

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4)

1. 사료 ​ 동천왕은 관구검에 패한 후 247년 환도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 ​ 『三國史』 「髙句麗本紀」 東川王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21년(247) 봄 2월에 왕이 환도성이 전란을 겪어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옮겼다.] ​ 2. 강단유사사학의 똥설 ​ 강단유사사학의 평양은 현재의 평양이다. 강단유사사학의 소설 속 낙랑군은 313년까지는 지금의 평양에 존재하는데, 그들은 동천왕이 위나라에 크게 패한 후 수도를 집안에서 위나라 영토인 낙랑군 바로 코앞인 대동강 북쪽으로 옮긴다고 한다. 그들의 소설에서 낙랑군은 대동강 남쪽에 있다. ​ 강단유사사학 종사자들도 이러한 소설에는 낯이..

역사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