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23

역개루 카페에서 당한 일

역개루 카페에 가입하여 처음 글을 썼고 이렇게 썼다고 강퇴 당했습니다. 유수가 그 카페 관리자인데 강단유사사학을 추종하는 사람 같습니다. ​ 강단유사사학은 학문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역사교시를 추종하는 종교집단 같습니다. ​ 제가 고려의 서경은 현재의 평양이 아니라고 했더니 ​ 유수(카페 관리자)가 최소한의 사료검토만 해도 제 주장은 틀란 거라고 해서 ​ 제가 네 말을 이해할 수 없으니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달라 한 것이 전부입니다. ​ 강단유사사학이 현재 역사학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폭력 때문입니다. 강단유사사학에 반대하는 사람은 결코 교수가 되기 어렵고, 관련 일자리에서 배제됩니다. 그들의 주장에 논리가 전혀 없음을 지적하면, 그들은 역개루 카페에서 보듯이 전혀 반론할 수 없습니다. ​ 역..

역사 2023.02.13

고구려는 요동 오환이 건국

오환과 선비는 북부여의 서쪽 후국이었으나, 흉노가 점령하여 복속시킨 지역이다. 이들은 메기장과 동장을 재배하고, 『후한서』 「오환선비열전」 其土地宜穄及東牆。東牆似蓬草,實如穄子,至十月而熟 수렵과 목축을 하였다. 『후한서』 「오환선비열전」 俗善騎射,弋獵禽獸為事。隨水草放牧 ​ 유철은 흉노를 쫓고 이들 오환인들을 요동외요 내부로 이주시키고 호오환교위를 설치하여 통제하였다. 『후한서』의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후한서』 「오환선비열전」 烏桓自為冒頓所破,眾遂孤弱,常臣伏匈奴,歲輸牛馬羊皮,過時不具,輒沒其妻子。及武帝遣驃騎將軍霍去病擊破匈奴左地,因徙烏桓於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五郡塞外,為漢偵察匈奴動靜。其大人歲一朝見,於是始置護烏桓校尉,秩二千石,擁節監領之,使不得與匈奴交通 ​ 오환은 (흉..

역사 2023.02.12

김알지의 계림국은 대구. 경상도 신라는 韓에서 온 석씨 박씨세력과, 김일제 후손인 김알지 세력의 결합

신라는 김알지의 계림국과 통합한다. 그 시기에 대해 『삼국사』는 서기 65년, 『삼국유사』는 서기 60년이라고 한다. ​ (ㄱ) 『三國史』 「新羅本紀」 탈해(脫解) 이사금(尼師今) 9년 03월 (65년 03월(음)) 『三國史』 「新羅本紀」 脫解 尼師今 九年, 春三月, 王夜聞金城西始林樹間有鷄鳴聲. 遲明遣瓠公視之, 有金色小櫝掛樹枝, 白雞鳴於其下. 瓠公還告, 王使人取櫝開之. 有小男兒在其中, 姿容竒偉. 上喜謂左右曰, “此豈非天遺我以令胤乎.” 乃收養之. 及長, 聦明多智略. 乃名閼智, 以其出於金櫝, 姓金氏. 改始林名雞林, 因以爲國號. ​ 탈해왕 9년(65년)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金城)의 서쪽 시림(始林)의 나무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 살피게 하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역사 2023.02.12

신라 韓에서 경주로 이동

대무신왕과 유수의 낙랑군 공방 후 『삼국사』의 신라 기록엔 300년까지 낙랑이 나타나지 않는다. 『三國史』 「新羅本紀」 基臨 尼師今 3년 三月, 至牛頭州, 望祭太白山. 樂浪·帶方两國歸服. [〔3년(300)〕 3월에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太白山)에서 망제(望祭)를 지냈다.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양국이 항복하여 복속해 왔다.] 예부여 일부가 韓을 떠나 신라와 열도로 이주하였는데, 이 기사는 신라로 귀순한 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 이는 신라가 경상도로 이동하였음을 의미한다. 신라의 경상도 이동을 기술하는 사료는 다음과 같다. ​ (ㄱ) 『三國史』 「新羅本紀」 탈해(脫解) 이사금(尼師今) (57년 11월 (음)) 『三國史』 「新羅本紀」 脫解尼師今立 一云吐解.. 時年六十二. 姓昔, 妃阿..

역사 2023.02.12

신라의 건국은 韓에서 있었던 사건

『삼국사』는 서나벌의 건국세력이 조선의 유민인 辰韓 6부라고 명시한다. ​ 『三國史』 「新羅本紀」 赫居世 居西干 元年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 一曰正月十五日. 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髙墟村, 三曰觜山珍支村 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髙耶村, 是爲辰韓六部. 髙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徃觀之,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則收而養之, 及年十餘歳, 岐嶷然夙成. 六部人以其生神異, 推尊之, 至是立爲君焉 [시조의 성은 박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년 4월 병진일(일설에는 정월 15일)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하니 13세..

역사 2023.02.12

왜=예=범집단, 왜와 예의 실체

조선의 역사설화에 의하면 범집단은 배달국에 참여하지 못하고 쫓겨나는데, 이들은 바닷가로 갔다. 농업을 못하고 수렵할 수 있는 지역에서 쫓겨나면 어로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주로 어로활동에 가장 유리한 지역인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어귀 부근의 바닷가로 이주하는데, 어로활동을 주로 하였다. ​ 배달국의 남부 해안가인 당산지역의 바닷가(조백하에서 난하까지 여러 강들의 어귀), 요동반도 바닷가(대능하에서 復州강까지 여러 강들이 요동만으로 흐른다), 황하 어귀, 양자강 어귀로 이주하고, 나중에 백제의 지배하에서 영산강 어귀로 이주한다. 영산강 어귀의 왜는 399년 신라에 항복한 후 403년 이후 열도의 나라(奈良)로 보내져 고구려계 열도소국의 주민이 된다. ​ 일제유사사학은 오사카와 나라에 3세기부터 ..

역사 2023.02.11

韓의 위치, 예(왜)군 남려

북부 번조선은 제와 제장성을 경계로 산동반도와 韓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산동반도 지역에 원절식 돈칼만 나타나므로 제에게 산동반도 지역을 빼앗긴 것으로 추측된다. ​ 황하 동쪽이고, 제수와 대야택 북쪽은 번조선이 중국으로부터 최후까지 지킨 韓 지역이다. 세력이 약해진 번조선은 요동고새 북쪽의 「한혁」편의 한후국과 결합하여 진번조선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사기』 「조선열전」에 연이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기』 「조선열전」 自始全燕時 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築鄣塞 (전 연의 시기에 진정 처음으로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킴을 경험하였다. 관리를 두고 장새를 쌓으려 하였다) ​ 중국 동해안의 번조선 중 이 지역이 최후까지 남았고, 왕을 한(칸)이라 하였으므로 중국인들도 이..

역사 2023.02.11

왕망전(新錢)이 증명하는 김일제 후손의 이주 [가야와 계림국]

​ 강단유사사학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일제유사사학의 교시를 좇아, 김수로와 허황옥을 부정하고, 서기 42년 고대국가로서의 가야 건국도 부정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신편한국사 7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2. 가야사의 범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2022.10.9. 현재) ​ “전기 가야사는 1∼4세기 동안 김해 가락국을 중심으로 한 경남해안 및 낙동강 유역의 변진 12국의 역사를 말한다. 이 시대를 세분하면, 철기를 수반하는 토광목관묘 문화가 시작되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경까지를 가야문화 기반 형성 시기로 볼 수 있고, 토광목곽묘 문화가 형성되는 기원후 2세기대를 加耶 諸國 성립 시기..

역사 2023.02.10

현재의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는 나라를 말아먹는다.[창녕 ∉ 가야]

창녕은 가야가 아니다. 지난 정부 강단유사사학은 우리 역사를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역사로 팔아먹으면서 그것을 세계적으로 공인 받기 위해 거짓 세계유산등재를 시작하였고, 현정부에서도 이를 계승하여 올해 조선총독부 소설이 세계적으로 공인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역사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신의 조상이 가공의 야마토왜 식민지 사람이 될 위기에 있다. 조선총독부 간첩으로 의심되는 대학교수 강단유사사학은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말은 다 거짓말이지만 가장 뻔뻔한 거짓말은 창녕이 가야라는 것이다. 1. 창녕은 낙동강 동쪽이므로 가야가 될 수 없다. 2. 창녕에서는 신라 유물이 나오고 가야 유물이 나오지 않는다. 3. 『삼국사기』는 명백히 가야의 비사벌과 신라의 비사벌을 구분하고 있다 가야 ..

역사 2023.02.10

재야 난하 갈석산설의 폐해

1. 난하 갈석산설의 무근거성 ​ 난하 갈석산설은 역사날조 총책 담기양이 제조한 것이다. 근거가 전혀 없다. 윤내현이 창려 갈석산을 주장하는 근거는 요수가 난하라는 것과 고죽국이 난하 동부라는 것이다. 윤내현, 「한사군의 낙랑군과 평양의 낙랑」, 『한국학보, 11.4』, 1985. 7-9쪽. ​ 윤내현은 고죽국이 난하 동부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라고 하나, 이는 요수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므로, 실질상 윤내현은 난하가 요수라는 단 하나의 근거로 창려 갈석산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난하가 요수였던 적은 없다. 윤내현은 『여씨춘추』 「유시람」 고유 주석을 근거로 난하가 요수라 하나, 윤내현, 『한국고대사 신론』, 일지사, 1993. 43-44쪽. 본고에서는 고유가 말하는 요수가 중역수..

역사 2023.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