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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유사사학과 일제 육군 참모본부의 교시

강단유사사학과 일제 육군 참모본부의 교시최재석은 일본인 학자들의 수미불일치를 ‘서두의 위장법’이라 명명하였다. 강단유사사학은 그들의 스승을 좇아 항상 서두의 위장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야마토임나설을 극복하고, 『삼국사』를 신뢰하고, 동북공정에 반대한다고 항상 서두에서만 말하고, 본론과 결론은 『삼국사』를 불신하고 야마토임나설과 동북공정을 추종한다. 전술하였듯이 일본육군 참모본부는 1870년부터 역사 날조를 시작하였다. 참모본부는 야마토임나설에 관해서는 『황조병사』(1880년)와 『임나고』(1882년)를, 광개토대왕릉비문에 관하여는 1884년 「동부여영락대왕비명해」와 「고구려고비고」를 제작하였다. 일제는 야마토임나설을 날조하고, 광개토대왕릉비의 글자를 변조하거나 지워서 야마토임나설의 장해물을 제거하였다. ..

역사 2024.07.15

강단유사사학은 야마토임나설을 극복했는가?

강단유사사학은 야마토임나설을 극복했는가? 일제유사사학의 야마토임나설(임나일본부설) 쓰에마스의 「임나흥망사」(1949)는 일제유사사학의 통설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야마토왜가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임나=가야를 직접 지배했다는 것으로 연민수는 쓰에마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末松說에 따르면, 백제는 367년 처음으로 일본에 遣使하여 국교를 열고 백제의 요청에 따라 己巳년(369년)에 일본이 대규모 출병을 단행하여 이를 계기로 이전부터 진행중이던 대한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고 한다. 나아가 김해의 임나가라를 중심으로 한 가야제국을 직접 지배 하에 두고 그 외곽에 있던 백제와 신라를 부용화시켜 간접지배 하에 두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이제국을 총칭하는 이른바 임나의 성립을 보게 ..

역사 2024.07.15

임나=가야는 야마토왜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하였다는 소설

강단유사사학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본서기」를 날조 해석하여, 야마토왜가 가야에 군사기지를 설치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일본서기」 249년(신공49년) 이야기를, 249년을 369년으로 바꾸고, 일본을 백제로, 신라7국을 임나7국이라고 변조하고, 정복을 상호선린우호관계로 날조한 후, 다음의 「일본서기」 262년 기사를 날조하여 382년 가야가 백제의 실질적 지배 하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62년에 신라가 조공해오지 않았다. 그 해에 습진언을 파견하여 신라를 치도록 하였다. [『백제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임오년(壬午年)에 신라가 귀국을 받들지 않으므로 귀국이 사지비궤(沙至比跪)를 보내어 이를 치도록 하였다. 신라인은 미녀 두 명을 단장시켜서 나루에서 사지비궤을 맞이하여 유혹하였다...

역사 202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