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유사사학이 위서라 주장하는 『단군세기』와 『규원사화』의 남국 기술이 『후한서』와 일치한다. 『규원사화』는 탕왕 때 후퇴한 사실이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도 『후한서』와 일치한다. 강단유사사학은 『후한서』가 우리 사서라면 날조라 주장했을 텐데 중국 사서여서 그러지도 못한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후한서』가 중국 동부를 동이의 땅이라 하고, 『삼국지』와 『후한서』가 삼한이 방 사천리라 하므로 그에 부합하게 추론할 것이다. 그러나 강단유사사학은 날조에 날조를 거듭하고 억지에 억지를 거듭하여, 한민족은 BCE 12세기에 석기시대를 벗어나 BCE 7세기에나 요동에서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되지만 진개에 의해 평양으로 쫓겨났다가 漢의 식민지가 되고, 한반도 남부는 4세기까지 70여개 소국이 있었다가 왜의 식민지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