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연대 추정장무이묘의 벽돌로부터 [大歲戊在漁陽張撫夷塼, 大歲在戊漁陽張撫夷塼] 무덤을 무신년에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太歲申漁陽張撫夷塼와 使郡帶方太守張撫夷塼으로부터 묘주가 고구려 유주의 어양에서 태어나 대방태수를 지냈던 고구려인 장씨임을 알 수 있다. 강단유사사학은 대방태수와 撫夷를 허구의 자칭이라고 주장하나 무덤에 허구의 관직을 적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撫夷는 고구려 왕이 위로부터 받아 준 작호이다. 무신년은 고구려가 후연을 정복한 이후의 무신년이다. 따라서 408년도 가능하나, 덕흥리고분의 태소래조도에 의하면 고구려는 초기 현지인을 태수로 임명하였으므로 408년으로 보기는 어렵다. 위는 488년과 490년 백제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이후 쇠락의 과정을 겪는다. 또한 523년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