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다라·기문이 중국 <양직공도>에 나오므로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경량의 주장(경남도민일보 2024.10.14.)에 대한 반론

역사회복 2024. 10. 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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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나온 '다라·기문' 중국 에 이미 등장

1년 전인 2023년 9월 17일, 가야 유적 7개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유산의 보존 가치의 탁월성과 보편성이 인류 단위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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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사학자 기경량은 다라, 기문, 반파, 탁 등이 6세기 무렵 만들어진 중국 <양직공도>라는 자료와 <일본서기>에서 확인되므로 그 소국들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이비 사학자답게 전혀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양직공도와 일본서기에 나오면 한반도 남부의 나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는 조선총독부 교시를 추종하는 사이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논리이다.

 

사이비들이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유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양직공도의 다라와 기문은 열도에 있었다는 근거는 무수히 제시되지만,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무조건 우기기만 한다. 그렇게 우기지 않으면 사이비들 사이에서 왕따 당해서 사이비 인생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사이비들이 취직하거나 출세하기 위해선 근거가 전혀 없어도 조선총독부 소설 만세만 크게 외치면 된다. 그러면 취직이 되고 출세를 한다. 기경량은 그러한 절차를 따라 교수가 되었을 것이기에 그에게 근거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머리 속에는 조선총독부 소설 만세만이 있을 것이다.

 

양직공도는 백제가 요서와 진평을 영유하였다고 한다. 요서는 황하 하류 서쪽이고 진평은 중국 남부 광서성 광동성 지역이다. 양직공도가 말하는 반파 탁 사라 지미 마련 상사문 하침라 등은 열도의 소국이다. 6세기 열도는 백제의 영토였다. 백제는 구주와 나라에 왜왕을 파견하여 열도를 다스렸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물자와 인력의 수탈, 관리의 임기제 파견은 백제의 열도 지배를 증명한다. 일제와 강단의 사이비들은 이것이 선진문물 수용과 군사력의 대가관계라고 코미디를 시전한다. 관리를 파견하여 상부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선진문물의 수용이 아니라 그냥 지배 피지배의 관계이다. 유사 이래 선진문물과 군사력이 대가관계인 적은 없었다. 그들의 소설 속에서만 있다. 혹시 파견된 군사의 지휘권을 열도에서 가지고 있었으면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아닌데, 일본서기에서조차 열도에서 징발된 병사의 지휘권은 백제에 있었다 기술하고 있다.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열도에서 파견된 병력의 장수 이름은 전혀 없다. 그냥 풍의 군대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모든 자료가 열도는 백제의 영토였다 기술하고 있어도 조선총독부 소설의 신봉자들은 조선총독부 소설 만세만을 떠들 뿐이다. 일제 사이비들은 일본서기에서 백제가 열도를 지배하였다고 기술한 부분을 삭제하지 못했다고 한탄하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서기의 신라7국을 임나7국으로 날조하면서 열도의 임나가 한반도의 가야라고 사기쳤다. 조선총독부 소설에 협조한 이병도 신석호가 해방 후 학문 권력을 장악하였고, 이병도 신석호에 굴종하였던 자들이 국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유치원생 수준의 논리력만 있어도 조선총독부의 소설은 소설임을 알 수 있음에도 그들은 교수가 되기 위해서 양심을 팔았다. 가야가 6세기 중반 멸망했다고 하면서 그들은 7세기 중반까지 외교와 전쟁을 하는 임나가 가야라고 사기친다. 왜 가야=임나냐고 물으면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가라고 답변한다. 조선총독부가 그에 대해선 교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조용하다. 조선총독부의 교시 없이는 한 마디도 못하는 똥개들이 조선총독부 소설 만세를 외칠 때는 시끄럽기 짝이 없다.

 

교수 신분보장 확실하다.기경량은 이제라도 진정한 역사 연구자로서 그의 인생을 시작하기 바란다. 그가 계속 조선총독부 소설 만세만을 외치다가 죽으면 후세에 그는 해방된 나라에서조차 매국을 한 인물로 영원히 우리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개과천선하여 올바로 역사를 연구한다면 사이비 출신이지만 우리 역사의 발견에 공헌을 한 학자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