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동북공정 배경과 재야사이비 문제의 심각성

역사회복 2024. 10. 2. 15:40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북경부터 요양까지 고구려 유물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되었다. 모택동 등 공산당 지도부도 요하 동쪽부터는 조선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과 달리 북경이 고구려 영토인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던 것이다. 그래서 역사 날조를 8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전연 후연 북연(삼연)의 유적 유물이라 사기치는 분묘가 다 고구려 것이다.

조양의 분묘는 도굴범이 벽화를 불태웠다고 사기친다.

벽화가 고구려 벽화와 완전히 같거나 묵서명이 고구려의 것임을 증명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벽화를 태웠을 것이다. 도굴범이 벽화를 태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쪽빠리들은 분묘를 비밀리에 발굴하고 있다. 가야 고구려 백제의 분묘임이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래도 쪽빠리들은 유적 유물을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한국과 쪽빠는 역사를 공유하므로 한국만 먹으면 자신들의 역사를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짱깨는 유적 유물을 완전히 망쳐놓고 있다. 다 조작하고 있다. 고구려의 것이라는 증거는 다 삭제시켜 놓고 있다. 강단 사이비(낙랑군 평양설)과 재야 사이비(낙랑군 난하설)들은 선비족의 삼연이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면이 있다는니, 고구려가 삼연의 영향을 받았다느니 하면서 동북공정에 죽을 맞춰주고 있다.

특히 재야 사이비가 더 문제다. 강단 사이비가 재야에 의하면 삼한이 바닷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낙랑군 난하설을 주구장창 주장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은 강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재야의 자기모순으로 인해 젊은이들은 낙랑군 평양설을 신봉한다.

북경에 고려영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있다. 북경이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에 고구려의 군영이라는 지명이 고구려가 망한 후에도 남아 있다. 난하설은 난하가 국경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북경의 고려영은 또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재야 사이비들은 최재석을 위대한 학자로 떠벌린다.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재석이 열도는 백제 땅이었고 대화왜는 백제의 주민이었다는 말은 절대로 따르지 않고 야마도왜 실재설에 동조한다. 그들은 너무 대중의 이해와 벗어나면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단 사이비는 조선총독부 소설에 충성해야 취직이 된다.

재야 사이비들은 난하설이 아닌 실재 역사를 주장하면 사이비로 몰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야마도왜 실재설을 따르는 이유와 같다. 그러나 윤내현의 난하설은 평양설과 마찬가지로 사료적 증거가 하나도 없고, 한나라가 해군으로 현재의 평양을 점령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강단사이비나 동북공정과 큰 차이는 없다.

난하설은 반성하길 바란다. 돈을 원하면 일을 하고, 진정한 역사를 원하면 그냥 조용히 있기를 바란다. 난하설 때문에 강단이 오히려 힘을 받아 역사 광복을 망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