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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는 삼국지 일본서기 등 외국의 사서에 있는 국가가 한반도에 있는 국가라고 단정한다. 그의 단언은 조선총독부 소설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 국가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증거가 있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런 근거 없이 무조건 삼국지와 일본서기 소국의 지명을 한반도 남부에 비정하는 것은 민비를 살해했던 일제 깡패가 했던 행동과 전혀 차이가 없다. 강단사이비들은 그 깡패를 위대한 학자로 인정하고 있다.
먼저 그는 “<삼국지>에는 기저국, 고순시국, 접도룩 등 우리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 나라의 이름들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에는 국읍과 읍락이 있었으며, 천군이 다스리는 별읍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라고 한다. 진수는 변진 변한 진한을 모르고 있다. 진수는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으로 고구려에서 약탈해온 사료로 우리 역사에 대해 기술하였는데 우리 역사를 몰라서 많은 오류를 범하였다. 이형기가 삼국지를 인용하려면 그가 주구장창 입으로만 떠벌리는 사료비판을 한 후에 삼국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기술해야 한다. 진수는 전삼한과 후삼한을 혼동하였다. 전삼한은 BCE 24세기 삼한조선이다. 당시 삼한은 요동과 한반도의 마한 50여개국, 요서와 중국 북부의 진한 12개국, 중국 동부의 번한 12개국을 말한다. 진수와 범엽이 말한 방사천리는 BCE 24세기 삼한조선이다. 강단 사이비들은 BCE 24세기 삼한조선의 소국들을 CE 1세기 한반도 남부의 방천리에 우겨 넣으면서 자기들이 삼국지를 인용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후삼한은 韓(황하 동쪽 제수 북쪽)에서 있었던 마한을 말한다. 마한은 이인자란 의미이다. 진한은 천자이고 마한은 이인자이다. 고조선이 붕괴되고 소국들은 저마다 마한이라 자칭하였다. 韓의 마한에 예맥조선의 유민들이 마한의 속국으로서 진한이라 자칭하였고, 韓의 원주민들이 변한이라 하였다(한은 원래 변한 지역이다). 진한과 변한이 합병하여 변진이라 하였다. 즉 변진은 초기 신라이다. 전삼한과 후삼한과 변진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모르는 이형기가 삼국지를 인용하면서 자기가 대단한 학자인 척 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형기는 일본서기의 탁순이나 탁기탄이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소국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는 전혀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조선총독부의 교시에 충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 “탁순에 집결하여 신라를 공격하여 깨뜨렸다. 그리하여 비자발,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7국을 평정하였다.”는 문구가 있다. 그들은 이 7국을 신라가 아니라 임나라고 하여 문언을 무시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들 7국은 임나 즉 가야의 영역인데, 이들 7국의 영역이 모두 신라에 속했던 시기는 없다. 특히 강단유사사학은 남가라를 김해라고 주장하는데, 김해가 신라의 영역이었던 시기는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일본서기」 7국을 문자 그대로 신라7국으로 해석하면 「일본서기」의 임나와 신라를 한반도 남부의 신라와 가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본서기」의 모든 이야기들도 열도에 관한 이야기가 되며 임나는 가야와 같은 말일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신라7국을 임나7국으로 강변하였다. 강단 사이비들은 사기를 치다가 서로 말이 맞지 않는다. 탁순이 대구가 되었다가, 창원이 되었다가 난리부루스를 춘다. 탁순이 대구라는 것도 달구벌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일제 깡패를 사모하는 마음에 그의 방법론까지 따라 한다. 전혀 근거가 없기 때문에 강단 사이비들은 가짜음상사를 근거로 제시한다. 「일본서기」를 올바로 해석하면, 이 기사는 백제가 열도를 처음 점령할 때, 남가라, 탁(탁기탄), 탁순은 신라마을의 영토였고, 백제 담로는 신라마을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남가라 탁기탄 탁순 등 신라7국을 신라마을의 관할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형기는 신라가 임나로 돌연변이하는 조선총독부의 소설을 추종하면서, 자기가 무슨 대단한 학자인 척, “사서를 통해 과거를 이해할 때 씨줄과 날줄을 엮어 천을 만들듯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각각의 입장에서 쓴 사서들이기 때문에, 외국의 사료 서로는 물론이고 우리 사서와도 교차하면서 분석하고 이해하여야 그 속에 담긴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 이를 역사학에서는 '사료비판'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것이 사료를 대할 때 비판적으로 보는 자세이다.”라고 떠벌린다. 그가 사료비판을 입으로만 떠벌리지만 말고 제발 사료비판을 하면서 역사를 연구하기를 바란다.
그는 임나가 광개토대왕비 등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으니까 임나는 우리 지명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의 이전 말과 배치된다. 그의 말은 남의 나라 역사책에 등장하는 소국은 우리나라에 있었고, 우리 역사에 나오는 소국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에서 사용되었으니 우리 나라의 지명이란 말은 개소리에 불과하다. 임나는 열도의 지명이다. 그래서 광개토대왕의 열도정벌 기사에 등장한다. 광개토대왕비의 열도정벌 조문은 절반이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가 고구려의 열도정벌을 은폐하기 위해 지웠다. 진경대사와 강수의 선조가 임나에서 온 것은 열도의 임나에서 왔다는 의미이다. 그가 주장하듯이 고대에 교류나 사람의 이동이 있었고, 한반도에서 열도로의 이동이 주가 되었지만, 열도에서 한반도로의 이동도 있었다. 진경대사와 강수의 선조는 열도로 건너갔지만 그 후손 중 일부는 일이 잘 안 풀려 다시 한반도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임나라는 지명이 우리 역사에 등장할 수 있다. 이형기는 임나만 나오면 무조건 한반도의 지명이라는 조선총독부의 소설을 추종하지만 말고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말하길 바란다.
그는 일본서기가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이라는 백제사료를 인용하여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근거는 없다. 조선총독부의 교시에 충성하기 위해서 그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일본서기가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이라는 백제사료를 인용하여 저술된 것은 열도가 백제의 관료인 왜왕이 다스리는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열도를 다스리기 위하여 만든 책이다. 따라서 백제사료 중 열도에 관한 부분을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 한반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특히 백제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백제가 열도를 관리하면서 열도에 관리를 파견하고, 열도에서 물자와 인력을 수탈하는 이야기를 기술하였기 때문이다. 백제의 열도 관리 이야기를 제외하면, 일본서기 대부분은 열도 마을국가의 이야기이다. 그 외 한반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일본 천황이 열도의 마을국가가 아닌 한반도의 고대국가로부터 조공받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반도의 이야기를 몇 개 삽입한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서기에 대왜=야마토왜는 일본의 속국이나 지방명으로 나옴에도 강단 사이비들은 조선총독부가 교시한 일본=대왜=야마토왜라 주장하고 있다. 이형기가 진정한 학자가 되려면 왜 야마토서기가 아니라, 일본서기인지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왜 일제는 야마토왜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야마토왜왕국시대는 없고, 고분시대니 아스카시대니 하는 것인지 연구하길 바란다. 왜 열도에는 백제가 망하기 전까지 도성과 왕궁이 없었는지도 연구하길 바란다. 일제 강단 사이비들은 야마토가 선진문물을 전수 받기 위해서 병사와 군수물자를 백제에 지원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관계는 있을 수가 없다. 관리의 파견과 인력과 물자의 수탈은 중앙정부와 지방의 관계이다. 이형기가 일본서기를 연구하면서 열도가 백제가 지배한 지역이었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은 이형기가 입만 열면 떠벌리는 사료비판을 실제로 하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형기는 기문이 남원이라고 하면서 조선총독부 소설에 대한 충성맹세를 한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그가 말하는 사료비판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도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는 남원에서 가야 유적과 우물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유적과 유물이 남원이 가야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되지 않는다. 남원에선 한반도 남부식 토기와 무덤과 백제의 위세품이 발견된다. 백제의 위세품이 발견되므로 백제의 영토였다. 그들은 백제의 영토였음을 부정하고 한반도 남부식 토기나 무덤이 가야식이라고 헛소리하면서 남원이 가야라고 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백제의 위세품이 발견되는 경기도 충청도도 백제가 아니게 된다. 부여에서도 남부식 토기가 발견되므로 부여도 가야여야 한다. 백제의 지방통제 방식인 백제의 위세품이 어느 나라 영역이었는가를 판단하는데 가장 결정적 기준이 되어야 함에도 그들은 백제의 위세품을 시장에서 사왔다고 하면서 남원은 백제가 아니라고 사기친다.
이형기를 포함한 조선총독부 소설에 대한 충성맹세자들은 우륵의 곡명 상기물과 하기물이 지명이라고 하면서 기물이 기문이고 남원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기를 치지도 못하고 코미디를 한다. 그들은 위대한 희극인들이다. 그들이 코미디 유튜브를 찍으면 대성할 것이다. 이형기는 우륵이 가야와 관련이 있는 여러 작은 나라들의 이름을 가지고서 작곡하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근거는 없고 유일한 근거는 가짜음상사이고, 실질적 근거는 총독부소설에 대한 충성이다. 위대하고 위대하신 우주 제일의 가야사학자 이형기 선생님께서는 제발 우륵의 곡명이 지명이었다는 근거를 제시하길 바란다.
『삼국사』에 의하면, 가실왕은 당의 악기를 보고 12달의 음률을 본 떠서 가야금을 만든 후, 나라마다 말이 다르므로 음악도 달라야 한다고 말하며 우륵에게 12곡의 작곡을 명하였다. 이는 가실왕이 중국의 음악과 구별되는 가야의 음악을 12달에 맞추어 작곡하라 명한 것을 의미한다. 12달은 한 해를 말하고 달력을 제정할 수 있는 제왕의 권력과 관계된다. 12곡명이 1년의 12달과 관계되므로 가야의 지역명과 관련될 수는 없다. 아마 12곡명은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이나 왕도정치의 이념과 관련되거나, 곡의 형식이나 내용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12곡명이 지명이 아님은 우륵의 곡을 전수 받은 신라인들이 12곡을 5곡으로 요약한 이유에서 명백해진다. 신라인 세 명은 우륵의 허락도 없이 12곡이 번다하고 음란해서 우아하고 바르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5곡으로 요약하였고, 우륵(于勒)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그 다섯 곡의 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한 후 곡이 좋다고 하면서 왕 앞에서의 연주를 허락하였다. 신라인들이 12곡을 허락 없이 5곡으로 줄였다는 것은 가야가 망했으므로 가야의 음악은 12곡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고, 우륵을 망명인으로 대우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처음에 우륵이 화를 낸 이유이다. 우륵은 다섯 곡의 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한 이유는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완성한 작품이 손상되었고 자신의 처지가 비참해서이고, 왕 앞에서 연주하라고 한 것은 포기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강단유사사학의 주장대로, 12곡명 중 10개가 가야의 지명이었다면, 우륵은 12곡이 5곡으로 축약되더라도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가야가 망한 마당에 과거의 가야 지명으로 된 곡체계는 당연히 변화되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형기는 우륵의 곡명을 말하다가 갑자기 창녕=빛벌=비사벌=비화가 예가 된다고 한다. 무슨 예가 되는지, 곡명과 비사벌간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주 제일의 위대한 가야사학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는가 보다.
하옇든 이형기는 창녕이 가야의 비사벌이라고 근거 없이 주장한다. 그의 주장엔 근거의 ㄱ자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총독부소설에 대한 충성맹세밖에 보이지 않는다.
1. 창녕은 낙동강 동쪽이므로 가야가 될 수 없다.
2. 창녕에서는 신라 유물이 나오고 가야 유물이 나오지 않는다.
3. 『삼국사기』는 명백히 가야의 비사벌과 신라의 비사벌을 구분하고 있다
가야 비사벌=완산주(555)=대야주(565)=강양군(경덕왕)=합주(고려)=합천
신라 비사벌=하주(555)=주 폐지(565)= 화왕군(경덕왕)=창녕(고려)
이형기가 창녕이 가야라고 주장하려면 필자의 주장에 합리적인 반론을 제시하길 바란다.
이형기는 또 신찬성씨록의 상기문·중기문·하기문과 <한원(翰苑)>에서 인용된 <괄지지(括地志)>에 보이는 기문하(基汶河)의 '기문'을 근거로 제시한다. 물론 이것들도 근거가 되지는 못하고 그의 충성 대상을 명확히 할 뿐이다.
이형기가 근거로 든 「신찬성씨록」은 기문이 아니라 파문(巴汶)이라 하며 임나의 동북에 파문이 있다고 하므로, 파문과 기문이 같다고 하더라도, 남원이나 임실과 하동이 임나의 서쪽 경계가 된다는 그들의 주장과 모순된다. 이형기를 포함한 강단유사학자들은 동과 서가 때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한 우주 최강의 유사 사이비 역사학자분들이시다. 이형기는 『한원』의 基汶河를 섬진강으로 보아 섬진강 유역인 남원이 기문이라 하는데, 基汶과 己汶은 한자가 다르다. 훈으로 읽는다면 발음이 달라질 수 있다. 기문하가 있다고 하여 그 유역에 기문이 있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또한 강단사이비들은 대사와 다사진이 같은 곳을 가리킨다고 주장할 때는 섬진강을 대사강으로 보므로 그들의 주장을 학술적 음상사라 보기는 어렵다. 또 그가 떠벌리는 사료비판을 하면 한원은 역사서가 아니다. 《한원》은 원래 아동 대상의 (훗날의 4-4-6-4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사륙병려문 창작을 위한) 대구(對句) 연습용 교재로 작성된 책이다. 역사서가 아니다. 장초금은 사료에 적힌 백제라는 고대국가와 열도의 백제 관료 왜왕이 통치하는 백제마을을 구분할 능력도 없었다. 장초금이 전혀 사료비판 능력이 없이 백제라는 말만 있으면 모아놓은 것이 한원에 나오는 백제 관련 이야기이다. 도대체 논리에 구멍난 곳이 전부 다여서 논리라 할 수도 없는 것을 총독부소설에 대한 지극한 충성으로 이형기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일본서기>에 보이는 기문과 관련된 기록들은 백제가 대왜 교역로를 확보하고자 기문과 지금의 하동 지역을 차지하면서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한 사실을 보여준다. 기문과 대사를 잃고 난 이후 대가야의 교역과 관련된 기록들은 보이지 않게 되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이형기의 지극한 충성은 총독부 소설을 위해서라면 그 자신이 똥개가 되어도 좋다는 살신성인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왜 남원으로 가야 대왜 교역로가 확보되는지? 왜 섬진강 건너의 하동을 확보해야 대왜 교역로가 확보되는지? 필자와 같은 범인은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백제의 서쪽과 남쪽은 바다이다. 왜 하동을 통해서만 바다로 가야 한다는 것인지 우주 최강의 위대하고 위대하신 이형기 선상님께서는 필자와 같은 무식한 사람들을 위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길 바란다.
그가 말하는 기문 관련 기록은 대사 다사진 반파 관련 기록인 것 같다. 帶沙의 帶와 多沙津의 多는 훈으로 읽는다면 전혀 다른 음이다. 따라서 반파마을과 가라마을은 다른 나라이고, 다사진과 대사는 다른 곳이다. 다사진과 대사가 강단유사사학의 주장처럼 하동이라면 조공하는 통로로 하겠다는 백제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된다. 백제와 임나=가야의 영역이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 있어야 섬진강 건너의 하동이 백제와 열도의 교통로가 되는지에 대해 그들은 묵언수행하고 있다. 더구나 강단유사사학은 「일본서기」 250년(370년) 5월 신공이 백제에게 다사성을 주었다는 이야기에 나오는 다사성(多沙城)도 하동으로 본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당시 백제는 마한에 가로막혀 하동까지 영토로 할 수 없다. 또한 이 때의 다사성은 신공이 역(驛)으로 삼도록 하겠다 하므로 백제와 야마토왜와의 교역로상 육로에 위치해야 한다. 그들의 말은 전혀 앞뒤가 부합하지 않는다. 그 경우 그들은 항상 사료가 오류라고 사기를 치거나 묵언수행한다.
이형기는 마지막으로 “한반도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식민지인 분국을 건설했다는 이론은 수많은 논증이 있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본서기와 일본에서 발견되는 모든 유물과 유적이 증거이다. 이형기는 총독부가 보지 마라고 한 것은 보지 않는다. 그의 지극한 총독부 소설에 대한 충성으로 그는 우주에서 제일가는 총독부 소설 추종자로서 그의 일생을 꽃피우리라 생각된다. 그의 앞날에 무궁한 유사영광이 있기를 기원하다. 그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그가 떠벌리는 사료비판을 충실히 하여 과거의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연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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