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지금까지 수로부인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모두 수로부인을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수로부인을 사람으로 보는 경우 『삼국유사』의 수로부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여러 모순점이 발생한다. 본고는 수로부인을 ‘비’ 더 구체적으로는 ‘가뭄 속 단비’로 보는 경우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가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밝히려 한다.
2. 수로부인이 사람인 경우 발생되는 문제점
수로부인(水路夫人)은 오직 『삼국유사』 「紀異第二」 水路夫人조에만 등장한다. 만약 수로부인이 사람이었다면, 용에게 납치된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姿容絶代의 수로부인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와 시가가 있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수로부인은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길에서만 등장한다. 『삼국유사』에서 수로부인은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에 면해 있는 곳에서 등장하고, 용이 바로 납치할 수 있는 바닷가의 정자에서 등장하고, 깊은 산이나 큰 못에서 언제나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상 수로부인은 납치되었을 때 해룡이나 신물(神物)과 함께 있었다.
수로부인은 기우제를 지낼 만한 곳에서만 나타나서, 인간에게 절벽 위의 꽃을 원하거나, 아니면 해룡이나 신물에 납치되는 역할만 한다. 수로부인은 목숨을 걸고 꺾은 꽃을 바쳐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은 거의 매번 납치되는 수로부인을 위해 모여서 수로부인을 내놓으라고 외친다. 매번 납치되면서도 수로부인은 항상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또 납치되었을 것이다.
수로부인은 해룡에게 납치당한 후 돌아와서 순정공에게 바닷속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 만약 수로부인이 사람이라면 공과 단 둘이 한 이야기가 모두에게 알려지기는 어렵다. 중앙 귀족인 순정공이 자신의 부인이 납치당했을 때의 이야기가 세간에 알려지도록 했을 리 만무하다.
해룡이나 신물이 순정공에게 저항하는 지방 권력자일 수는 없다. 수로부인이 납치되는 곳이 바닷가, 깊은 산, 큰 못이므로 신라의 지방이다. 중앙의 귀족인 순정공이 가는 지방마다 그 부인이 납치당할 정도로 신라의 중앙권력이 약하지 않았다. 만약 그러했다면 순정공은 부인을 경주로 돌려 보내야 하고, 매번 납치당했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수로부인은 ‘가뭄 속 단비’
매번 신물에 납치되면서도 다시 인간에게 돌아와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것은 ‘가뭄 속 단비’였다. 가뭄은 수로부인이 해룡 등의 신물에 납치된 것이다.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며 단비를 원했다. 기우제는 천 길이나 되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에 면해 있는 곳, 용이 나올 것 같이 장엄한 바닷가의 정자, 깊은 산, 큰 못 등 신물이 있을 법한 곳에서 하였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가뭄이 든 경우 단비는 姿容絶代의 아름다움이다. 그 무엇도 단비보다 아름답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단비는 인간의 통제 하에 있지 않았다. 단비는 해룡의 궁전에서 더 행복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인간은 단비와 혼인하였다. 단비를 순정공의 부인으로 만들었다. 혼인으로 인간은 단비를 납치한 신물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었고, 단비를 내놓지 않는 신물을 단죄할 힘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삼국유사』의 해가(海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가의 첫 구절 龜乎龜乎出水路는 “논바닥이 갈라졌구나, 논바닥이 갈라졌구나, 단비를 내놓아라”로 해석해야 한다. 해룡을 거북이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비와 혼인하였어도 단비에게 정조를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요구할 수 없었다. 정조를 지키려다 단비가 해를 입는다면 인간은 더 큰 손해를 볼 것이었기 때문이다. 단비는 자용절대이자 절대선이었다. 단비를 납치한 신물이 나쁜 것들이었다. 인간은 단비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단비는 천 길 절벽 위의 꽃을 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소를 끌고 가던 농부는 늙었음에도 목숨을 걸고 단비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것도 자신이 단비에게 꽃을 꺾어 줄 자격이 있는지 걱정하면서 단비의 아량을 구하였다.
단비에게 절벽 위의 꽃을 꺾어 바치는 것은 기우제의 사전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무당이 수로부인이 꽃을 원한다 하면, 모인 사람들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 할 때, 늙은 농부가 나서서 헌화가를 읊고, 절벽에 올라가 꽃을 꺾는 상징적 행위를 한 후, 꽃을 제단에 바쳤을 것이다. 이것은 단비가 감동하여 인간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하도록, 단비에게 늙은 농부의 정성과 인간의 단비에 대한 사모의 정을 각인시키는 절차였다. 인간은 단비로부터의 보답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단비가 인간과 함께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4. 왜 순정공이 인간의 대표로 단비와 혼인하였는가?
가뭄이 들자 기우제 예산이 편성되었을 것이다. 부패한 관료들은 이 예산을 치부할 기회로 삼았을 것이나, 순정공은 편성된 예산을 다 사용하였을 것이다. 순정공이 임해정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는 경내의 백성을 막대기로 땅바닥이라도 치라 하면서 기우제에 참여시켰다. 이들 굶주린 백성에게는 한 끼 식사라도 돌아갔을 것이다. 순정공은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항상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의 비용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분배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기우제를 많이 지내면 정부 예산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아마도 순정공은 사재를 출연하거나, 기우제를 지내는 곳 주변의 부유층이 기우제에 출연하도록 하여 부족한 비용을 충당했을 것이다. 순정공은 기우제를 명목으로 굶주린 민중들에게 밥 한끼라도 먹이려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순정공은 수로부인의 부군이 되었다. 가장 열성적으로 수로부인을 신물로부터 되찾으려 노력한 관료였기 때문에 민중은 그를 수로부인과 혼인시켰다. 당시의 민중들이 기우제로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순정공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알아챘을 것이고, 순정공을 신뢰하였을 것이다. 자용절대이자 절대선인 수로부인은 사람이 통제할 수 없었고 항상 신물들에게 납치당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백성을 위하는 순정공은 수로부인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어쩌다 순정공이 기우제를 지낸 후 비라도 오면, 순정공의 부인이 돌아왔다고 기뻐하였을 것이다.
5. 결
수로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의인화 사례의 하나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수로부인이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每經過深山大澤屢被神物掠攬(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항상 신물(神物)에게 붙들려갔다)’라고 하여, 수로부인이 사람이 아닌 기우제의 목적인 단비임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申鉉圭. 「水路夫人」條 ‘水路’의 正體와 祭儀性 硏究」, 『어문론집』 32, 중앙어문학회, 2004, 137-163쪽.
이동철, 「수로부인 설화의 의미 -기우제의적 상황과 관련하여-」, 『한민족문화연구』 18, 한민족문화학회, 2006, 223-256쪽.
국문요약
지금까지 수로부인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모두 수로부인을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수로부인을 사람으로 보는 경우 『삼국유사』의 수로부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여러 모순점이 발생한다. 본고는 수로부인을 ‘비’ 더 구체적으로는 ‘가뭄 속 단비’로 보는 경우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가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밝혔다. 『삼국유사』는 ‘每經過深山大澤屢被神物掠攬(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항상 신물(神物)에게 붙들려갔다)’라고 하여, 수로부인이 사람이 아닌 기우제의 목적인 단비임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었다.
주제어: 수로부인, 해가, 헌화가
A New Hypothesis on the True Identity of Surobuin
Abstract
Although numerous studies on Surobuin have been conducted so far, they have all regarded her as a person. However, viewing Surobuin as a person leads to several contradictions within the story of Surobuin found in the Samgukyusa. This paper reveals that when Surobuin is interpreted as ‘rain,’ more specifically as ‘beneficial rain during a drought,’ the story in the Samgukyusa can be understood more logically. The Samgukyusa clearly indicates that Surobuin is not a person but rather rain, the object of a rain-invocation ritual (祈雨祭), as evidenced by the phrase, "Whenever passing through deep mountains or large lakes, she was always seized by divine beings (每經過深山大澤屢被神物掠攬)."
Keywords: Surobuin, Haega, Heonhw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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