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백제 멸망 후 열도는 8세기까지 당나라, 신라, 대진의 부용국

역사회복 2024. 5. 21. 04:10

 

당은 백강전투에서 승리 후 664년 쓰쿠시에 도독부를 설치하여 6725월 철수할 때까지 8년간 약 2,000명으로 구성되는 부대를 6회에 걸쳐 파견하여 열도를 지배하였다. 일본서기38대 천지의 재위 기간인 668-672년은 당나라의 열도 지배기간에 포함되므로, 열도에 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일본서기38대 천지도 당나라와 교섭한 백제인을 모델로 하여 날조된 인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은 672년 요동반도백제와 평양(요양)의 전투에서 신라의 우세가 거의 확정되므로 열도를 지배하기 어려워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당이 열도에서 떠난 후, 6726월 신라는 2만 병력을 파견하여 임신전쟁을 통해 친신라정권을 세우고 열도에 최초의 고대국가를 성립시킨다. 일본서기39대 천무는 신라가 위성국의 지배자로 세운 인물이므로 천지의 동생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일본서기39대 천무도 신라가 세운 인물을 모델로 하여 날조된 왕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친신라세력 집권 15년 후 다시 백제계가 집권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39대 천무가 686년에 죽고 40대 지통이 690년 즉위한다. 686년에서 690년 사이의 기간은 친신라세력에 대해 백제계가 반격하여 정권을 되찾는 기간으로 추정된다. 백제계가 집권하므로 지통이 천무의 아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일본서기40대 지통도 날조된 왕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백제계가 집권한 후에도 열도는 727년까지 신라의 속국으로서, 신라의 지도와 감시 하에 정치제도 정비, 신라 복식 사용, 왕도(등원경) 설립과 이전, 불사 신축 등 국가의 체계를 갖추었다가, 대진(大震)이 강력해지면서 대진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