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E 2년에 낙랑군 동부도위가 불태운 위례성은 한수 동북쪽의 주민을 징발하여 수리한 것으로 보아 비류의 첫 위례성이고, 이로부터 미추홀이 낙랑 동부도위와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비류의 위례성이 온조의 위례성 동북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단유사사학이 인천을 비류, 온조를 서울이라 하여 한반도에 비정하는 것은 두 위례성의 위치관계 확인만으로도 날조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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