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상지 묘지명에 ‘그 조상은 부여씨로부터 나왔는데 흑치지역에 봉해지면서 흑치를 성으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양자강 하류 이남의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빈랑(檳榔)이라는 나무 열매를 항상 씹어 이가 검게 된다고 한다. 『삼국사』, 『구당서』, 『신당서』 모두 “黑齒常之 百濟西部人(흑치상지는 백제의 서부인이다)”이라 하는데, 『구당서』와 『신당서』는 월주가 백제의 서부 지역이라고 한다. 『구당서』와 『신당서』의 월주는 전술하였듯이 진평을 의미한다. 『중국장수전전(中國將帥全傳)』도 흑치상지의 출신지인 백제 서부가 지금의 광동성 흠현 서북이라고 하는데, 흠현이 광서성 남령시(南寧市) 동남쪽이므로 흠현 서북은 백제향 즉 진평이다. 진평=흑치는 백제의 동남아 무역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백제가 광서성까지 진출하였다는 사실에서, 백제가 타밀인들로부터 동남아와 중국 사이의 무역권을 빼앗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중제유사사학은 광서성의 백제향을 지우기 위해 ‘백제’가 쟁기 주둥이와 같은 지형에서 유래한 지명이라 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壯族이 백제허의 墟자나 대백제의 大자의 뜻을 모를 가능성이 없으므로 억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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