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백제도 근초고왕 시 낙랑군을 영토화했다

역사회복 2024. 5. 17. 18:53

246년 이후 백제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낙랑은 당연히 낙랑군 본군이다. 韓 지역 즉 백제는 낙랑군 동남쪽이다. 286년 책계왕이 대방왕과 혼인으로 동맹관계를 맺고 고구려에 대항한 것은 황하 항해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304년 분서왕이 낙랑 서쪽 현을 취하였다는 것은 오류로 보인다. 『삼국사』 편찬자들이 온조왕의 낙랑군 동부도위에 대한 언급을 본군으로 착각하고 낙랑 동쪽 현을 취하였다는 기사를 낙랑 서쪽 현을 취하였다고 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이왕과 분서왕이 낙랑군을 공격한 것은 황하 항해의 안전을 위해 황하 서쪽인 낙랑군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서진 말 ‘흉노’ 선비 등 중국 북부의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남하하여 중국 북부를 통치하는 소위 북조시대가 시작되었는데, 그 혼란기를 이용하여 고구려와 백제가 낙랑군을 차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장통이 모용외에 귀부하여 모용외의 땅이 되었다. 당시 모용외는 서진의 유주도독 왕준에 예속되어 있었다. 372년 동진은 근초고왕을 진동장군으로 삼고 낙랑태수를 거느리도록 하여 백제가 낙랑군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모용씨의 전연이 망하자 백제가 낙랑군을 영토로 하였음을 의미한다.

강단·일제유사사학은 고구려가 313년 한반도에서 낙랑군을 점령했다고 하나, 낙랑군은 요동고새 남쪽으로 원래 漢나라 땅이며 한반도 북부는 고구려의 영토였다. 전술하였듯이 CE 37년부터 CE 44년까지 대무신왕이 낙랑군을 점령했으며, 미천왕은 낙랑군을 공격하였지만 영토화하지는 못하였고, 백제가 근초고왕 시에 낙랑군을 점령하였다. 백제가 후연에게 낙랑군을 뺏긴 후,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점령하면서 낙랑군을 포함한 서진의 유주 평주 지역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고구려의 멸망 시까지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