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규는, 「전라도 천년사」 반대자들이 마한과 관련된 「전라도 천년사」의 지명 비정에 대해서 일본 야마토 정권의 한반도 지배설을 합리화시켜주는 것이라 공격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라도 천년사」 반대자들의 공격은 「일본서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논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라도 천년사」 반대자들은, 「일본서기」의 지명을 열도가 아닌 한반도 남부로 비정하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라 주장하고 있다. 마한에 대해서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가 백제로부터 독립된 마한의 영토라 하고 있는데, 「전라도 천년사」 반대자들은 마한은 서기 9년 백제에 망했으므로 전라도도 백제영토라 주장하고 있다. 「전라도 천년사」 반대자들이 마한 지명 비정과 관련하여 「일본서기」를 신뢰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최완규만의 소설이다. 「일본서기」엔 마한이 나오지 않는데 「일본서기」의 어떤 부분을 신뢰하여 마한의 지명 비정을 반대한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전라도 천년사」 관련 발언을 하면서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하고 있음에도 그가 강단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라일보라는 신문에 그의 글이 실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는 “1980년대 이후, 그동안 전라도 지역에서는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문헌자료의 절대적 빈곤으로 정확히 알지 못했던 ‘마한’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이루어져 왔다”고 말하면서, 「일본서기」에 기술된 백제 근초고왕 시기 마한을 정복한 것이 사실이 아니고, 마한은 6세기 전반까지 독립국이었다고 기술하는 「전라도 천년사」는 고고학의 연구 성과에 기반한 것으로 존중 받아야 할 업적이라고 주장한다.
전라도 지역이 마한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백제와 신라의 고향은 韓(황하 동쪽 제수 북쪽)이다. 북경과 당산 지역에 있던 예맥조선의 준왕은 남쪽의 韓으로 왔다. 그 후손이 韓을 평정하여 마한(제 이인자)이라 칭하였다. 전라도와 백제가 멸망시킨 마한은 전혀 관련이 없다. 최완규는 「일본서기」에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이 기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강단의 소설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고고학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여러 설이 있을 경우 주류 견해를 수용하여 고고학적 발견을 논의해도 될 것이다. 현재의 주류 견해인 강단유사사학은 마한이 전라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필자는 최완규가 마한이 전라도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최완규를 비롯한 한국의 고고학계가 고고학자로서 충실하게 일했다면 비난할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고고학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소설을 지키기 위해 고고학의 발견을 날조하였다.
남원 익산 나주 등 전라도 전역에서 백제의 위세품이 발견된다. 그가 마한이 전라도에 있었다 생각했더라도 백제의 위세품이 나오면 백제의 지방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백제의 위세품이 나와도 시장에서 산 것이며 백제의 지배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면서 독립국 마한을 주장하는 것은 고고학이 아니다. 그냥 조선총독부 소설에 대한 충성맹세에 불과하다.
토기, 장신구, 분묘형식 등이 가야의 것이라느니, 마한의 것이라느니, 백제의 것이라는니 주장하는 것도 고고학의 범위를 일탈한 것이다. 토기가 지배자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한반도 남부에 그런 양식의 토기나 분묘가 있었는데, 백제가 지배한 지역은 백제가 되고, 가야가 지배한 지역은 가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나 가야 모두 지배세력은 한반도 남부인의 관점에서는 외부인들이기 때문이다. 백제의 영역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부여나 익산에서도 가야식(?) 토기 등의 유물이 나왔다. 그렇다면 고고학계가 이러한 유물을 가야식이라 이름 붙인 것이 잘못이다. 한반도 남부식 토기라 이름 붙여야 했다. 물론 그것이 가야에서 생산된 것인데 교역의 결과 백제에서 발견된 것으로 입증되면 가야식이라 할 수 있다. 즉 생활용품은 지배세력과 무관하고, 교역의 대상이 되므로, 발견된 곳을 지배세력을 추단할 근거로 볼 수는 없다.
고고학계가 지배세력을 결정 짓는 위세품이 전라도에서 발견되면 시장에서 사온 것으로 보아 백제의 영역임을 부인하고, 충청도에서 발견되면 백제의 영역임을 인정하는 모순을 보이며, 지배세력과 무관한 생활용품 등의 양식이 자기들이 주장하는 백제의 양식과 다르다고 하여 독립국을 상정하는 것은 그들이 사이비임을 자인하는 것 이외의 의미는 없다.
최완규 등 한국의 유사고고학계는 위세품과 생활용품의 지배세력과의 관계를 정반대로 해석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고고학적으로도 조선총독부 소설이 입증된다고 사기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이비 고고학과 사이비 역사학이 제조한 「전라도 천년사」는 당연히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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