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왜 4

일본서기는 죄가 없다

흔히들 일본서기에 야마토임나설이 기재되어 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일본서기에는 일본이 왜와 임나 백제 신라 등 열도의 이주민 마을을 다스리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일제유사사학과 강단유사사학이 말하는 대왜(그들은 야마토왜라고 이름부터 날조한다)는 일본 즉 열도백제가 다스리는 마을일 뿐이다. ​ 백제가 망할 때까지 열도에 독립된 나라가 전혀 없었다. 처음엔 가야계의 야마대(야마일, 사마대)국이 지배하고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부터 백제가 담로를 통해 지배하고, 4세기 말 백제가 태자 전지를 왜왕으로 파견하여 백제가 직접 지배하고, 5세기 고구려와 백제의 남북국 시대를 거쳐 6세기부터 백제가 다시 지배하였다. 열도는 우리 고대사의 강역이었다. ​ 「일본서기」는 백제인들이 백제를 지우..

역사 2023.04.23

임나가 가야인가?

임나=가야 주장의 배경 ​ 일제와 강단유사사학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를 비롯한 여러 소국들이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라고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이름이 같으니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물론 이들 국가는 열도에 있는 소국의 이름이다) 문제는 임나이다. 한국에는 가야가 있었고, 「일본서기」에는 임나가 나온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서기」의 임나가 가야라고 날조한다. ​ 그들은 「일본서기」의 임나가 가야를 말하므로 「일본서기」의 내용이 한반도 남부에 관한 이야기라 주장한다. 이러한 날조에 기반하여 강단유사사학은 가공의 야마토왜가 4세기 이후 한반도 남부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 [야마토왜라는 왕조 자체가 날조이고, 일본이 사실은 백제를 의미하고, 일본..

역사 2023.02.20

왜=예=범집단, 왜와 예의 실체

조선의 역사설화에 의하면 범집단은 배달국에 참여하지 못하고 쫓겨나는데, 이들은 바닷가로 갔다. 농업을 못하고 수렵할 수 있는 지역에서 쫓겨나면 어로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주로 어로활동에 가장 유리한 지역인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어귀 부근의 바닷가로 이주하는데, 어로활동을 주로 하였다. ​ 배달국의 남부 해안가인 당산지역의 바닷가(조백하에서 난하까지 여러 강들의 어귀), 요동반도 바닷가(대능하에서 復州강까지 여러 강들이 요동만으로 흐른다), 황하 어귀, 양자강 어귀로 이주하고, 나중에 백제의 지배하에서 영산강 어귀로 이주한다. 영산강 어귀의 왜는 399년 신라에 항복한 후 403년 이후 열도의 나라(奈良)로 보내져 고구려계 열도소국의 주민이 된다. ​ 일제유사사학은 오사카와 나라에 3세기부터 ..

역사 2023.02.11

광개토대왕릉비문 기해년 기사의 날조

광개토대왕릉비문은 기해년 문장도 날조되어 있는데 원래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于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喜後) (稱)其忠□ □遣使還告以□計 [太王(喜後)의 喜는 김병기의 추측이고 後는 필자의 추측이다. 궤파성지의 경우 태왕이 기뻐한 것과 모순되므로 글자를 지웠을 것이다.] ‘潰于城池’가 ‘潰破城池’로 날조되어 있고,[김병기,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학고재, 2005. 166쪽.] 喜後가 지워져 있다. 날조를 바로잡아 해석하면 「영락 9년 기해년에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내통하였다. 왕이 평양으로 순시하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께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있다가 성지(城池)에서 도주하여, 신이(노객은 항복한 나..

역사 2023.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