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istory1.daumcdn.net/tistory_admin/blogs/image/category/new_ico_5.gif)
13. 고구려 연호의 변동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북경부터 요양까지 고구려 유물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되었다. 모택동 등 공산당 지도부도 요하 동쪽부터는 조선이라 생각했으나, 그러한 생각과 달리 본고의 주장처럼 북경부터 고구려 영토인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래서 중국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역사 날조를 시작했다. 북경부터 요양까지의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분묘를 서진이나 삼연(전연, 후연, 북연)의 묘로 날조했다. 서진과 삼연은 영정하 이남에 있었으므로 영정하 이북의 고구려 영토에 이들의 분묘가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조양의 분묘는 도굴범이 벽화를 불태웠다고 사기 친다. 벽화가 고구려 벽화와 완전히 같거나 벽화에 있는 글자가 고구려의 것임을 증명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벽화를 태웠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