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처용가 최초 완전 해독

역사회복 2024. 11. 18. 11:44

양주동이 처용가를 오역한 이래 전 국민이 처용가를 오해하고 있다. 양주동은 자칭 국보이나, 양주동이 국보라면 김소월이나 윤동주는 국보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독립투쟁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향가(사뇌가) 해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소창진평이 해독법을 제시한 상태에서, 당시 시간 많은 놈팽이라면 양주동 정도는 다 했을 것이다. 소창진평과 이오십보 소백보의 수준일 뿐이다. 현재의 해독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바보 대중을 상대로 국보놀이나 했던 양주동이 국보가 될 자격은 전혀 없다. 8행의 오역은 해독이라기 보다는 날조에 가깝다. 특히나 고려 처용가가 있는 상태에서 양주동처럼 해독한 것은 양주동이 아주 멍청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東京 明期 月良              東京 ᄇᆞᆯ기 ᄃᆞ라

夜 入伊 遊行如可          새배 들이 놀녀에가

入良沙 寢矣 見昆          드러사 자ᄅᆡ 보곤

脚烏伊 四是良羅           허토이 너히어라

二肹隐 吾 下於叱古      두흘은 내 아래엇고

二肹隐 誰支 下焉古      두흘은 누기 아래언고

本矣 吾 下是如馬於隐   아ᄋᆡ 내 아래이에ᄆᆞ런

奪叱良乙 何如 爲理古   앗알 어에 ᄒᆞ리고

 

동경 밝은 달에

새벽 되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아래였고

둘은 누구의 아래인가?

원래 내 아래이지만

(다시) 빼앗아올 것을 어떻게 할까?

 

1) 東京: 양주동이 ‘ᄉᆡᄫᆞᆯ’이라 읽었으나, 현재 그 근거는 희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라의 수도는 금성이었고, 동경은 신라의 식자층이 8세기 중엽에나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므로 한자음 그대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2) 夜 入伊: 夜가 ‘새벽’의 뜻으로 쓰였으므로 ‘새배 들이’로 읽는다. 고려 처용가는 ‘새도록’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밤이) 새도록’의 의미이고, 여기의 ‘새배 들이’는 ‘새벽이 되게(되도록)’의 의미이다. ‘밤 들이’는 ‘밤이 될 때까지’가 되어 늦은 저녁에 들어왔다는 말이 되므로 고려 처용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3) 見昆: 다수설은 ‘보곤’이라 읽으나, 강헌규는 昆이 尼의 오자라고 하면서, 見尼라 수정하여, ‘살니’라 읽는다. 강헌규는 삼국 지명의 見이 ‘살’ 발음을 표기한 것을 증거로 한다. 그러나 見에 ‘살피다’의 뜻이 있어, 지명 표기 시 ‘살’을 見으로 표기할 수 있다. 즉 見이 ‘살’ 발음을 표기하였다고 하여 동사 ‘살다’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살다’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 한, ‘살피다’와 ‘보다’가 모두 존재한 것을 전제하고 읽어야 한다. 見을 ‘살피다’의 의미로 썼다면, ‘피’에 해당하는 글자가 추가되어야 하므로, 여기의 見은 ‘보’로 읽어야 할 것이다.

강헌규는 昆은 ‘-거든’이나 ‘-는데’의 의미이고, 尼는 원인의 의미라 하여 昆이 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미 ‘니’는 원인만이 아니라 전제도 표시한다. 여기에서 보는 행위로 인해 다리가 넷이 된 것이 아니다. 즉 여기서 昆을 ‘보는데’나 ‘보니’ 양자 모두로 해독할 수 있다. ‘보니’도 본다는 행위가 있었음을 전제하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설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4) 脚烏伊: ‘가로리’류로 읽는 견해와 ‘허토이’류로 읽는 견해가 대립한다. 脚의 훈을 ‘가롤’로 볼 만한 예는 고려가요 ‘처용가’를 제외하고는 없으며, 脚․ 腓․ 股 등은 여러 중세 문헌에서 ‘허튀’ ‘허퇴’ ‘허틔’로 해석되었다. 脚烏伊에는 ‘ㄹ’도 나타나지 않으며, 사람에게 가랑이는 하나이므로, 脚烏伊는 ‘허토이(무릎 아래의 다리)’로 읽어야 할 것이다.

5) 四是良羅: 良羅는 감탄 종결어미로 본다.

6) 下於叱古: 다수설은 고려 처용가의 ‘내해어니와’를 근거로 下를 ‘해’로 읽고 소유물이나 ‘것’의 의미라 한다. 강헌규는 下를 훈차로 보아 ‘알(아래)’로 본다. ‘해’를 표시하기 위해 下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찬기파랑가의 安攴下, 도천수관음가의 一等下叱於, 상수불학가의 佛道向隐心下에서 下는 ‘아래’로 읽어야 문맥이 통한다. 처용가에서 下를 ‘아래’로 읽을 때도 문맥이 통한다. 따라서 근거 없이 下가 해에 잉용(仍用)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아래’로 읽어야 할 것이다.

7) 本矣: ‘본ᄃᆡ’류로 읽는 견해, ‘미틔’류로 읽는 견해, ‘아ᄋᆡ’류로 읽는 견해가 있다. 矣는 ‘ᄃᆡ’를 표기할 수 없고, ‘본ᄃᆡ’가 되기 위해선 本冬矣로 표기되어야 하므로 ‘본ᄃᆡ’로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밑’은 本보다는 底자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ᄋᆡ’로 읽는 견해를 따른다.

8) 奪叱良乙: 奪叱이 ‘앗’이고, 乙은 ‘ㄹ’로서 미래의 동명사화 접미사이다. 良은 매개모음 ‘아’로 생각된다. 따라서 ‘아살’로 읽을 수 있다. 명사 ‘아살’은 爲의 목적어가 되나, 목적격 조사는 생략되었다. 처용이 생각하는 것은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을 앞으로 어떻게 되찾아 올 것인가이다. 즉 ‘어에 ᄒᆞ리고’는 탄식이 아니라 앞 일의 계획이다. 양주동은 奪叱良乙을 ‘아ᅀᅡᄂᆞᆯ’이라고 읽어서 이를 이미 발생한 역신의 앗음으로 착각하였다. 이러한 착각의 결과 ‘어에 ᄒᆞ리고’를 탄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고려 처용가에서도 “熱病神이ᅀᅡ 膾(회)ㅅ가시로다”로 표현되고 있다. 처용은 역신을 마음대로 할 능력이 있다. 처용은 역신을 당장 죽일 수도 있는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唱歌作舞) 생각한 후 역신을 그냥 돌려 보내 주기로 결정하고 물러났다(而退). 그래서 역신은 처용의 아량에 감동하여 처용의 형용(形容)만 봐도 물러나겠다고 맹세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역병에 대응할 수단이 없었다. 역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역신과의 평화를 최선의 대안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평화는 처용이 우리 편이므로 역신을 배려하는 평화였다. 실질은 무기력한 처지에서 평화를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처용을 끌어들여 사람이 우월한 상태의 평화로 만들었다.

『향가 등 우리 고시가 완전 해독』에서 인용함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766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