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강단의 『삼국유사』 末을 未로 날조한 사기질

역사회복 2024. 11. 16. 09:17

『삼국유사』 「탑상」 금관성파사석탑 원문

首露王聘迎之, 同御國一百五十餘年. 然于時海東末有創寺奉法之事 蓋像敎未至而圡人不信伏, 故本記無創寺之文.

 

강단은 然于時海東末有創寺奉法之事의 末을 未로 날조하여 해석하고 있다.

 

원문을 해석하면

수로왕이 그를 맞이하고 함께 나라를 다스린 것이 150여 년이었다. 이때에 해동 끝에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있었으나, 대개 像敎(대승불교) 이전이었고 토착인들이 신복하지 않았으므로 본기에는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

 

강단은 글자를 날조한 후

수로왕이 그를 맞이하고 함께 나라를 다스린 것이 150여 년이었다. 이때에 해동에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다. 대개 불교가 아직 들어오지 못하여 토착인들이 신복하지 않았으므로 본기에는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

 

강단에 의하면 원문은 절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불필요하게 두 번이나 말하게 된다. 문맥도 안 맞게 된다.원래 절이 없었으면 본기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었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원문에 의하면 이때도 불법을 받들었지만 토착인들이 신봉하지 않아 본기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므로, 불필요한 말도 없고 문맥도 맞는다.

 

이렇게 말만 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맞다고 억지를 쓸 것이다. 그러면 원문을 보면 된다. 글자가 어떻게 써져 있는지를 보면 된다. 그리고 末과 未는 오각될 수 없다. 불분명하면 오해될 수 있으므로 명확히 표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로 뒤에 蓋像敎未至而圡人의 未자도 나오므로 비교해보면 오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시한 원문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앞 둘은 규장각본이고, 뒤의 둘은 고대 소장본이다.

나는 강단이 제시한 대로 해석했다. 학자의 탈을 쓴 생명체들이 이렇게 뻔한 거짓말을 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결국 그들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이렇게 순전히 조선총독부 소설을 위해 사기질을 일삼는 것들이 말하는 것을 믿는다면 그러한 생명체들은 개돼지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적가 최초 완전 해독  (0) 2024.11.17
혜성가 최초 완전 해독  (0) 2024.11.16
토사구팽, 皃史, 모죽지랑가 최초 완전 해독  (0) 2024.11.15
고구려 세계(世系)  (1) 2024.11.15
서동요 최초 해독  (0)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