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토사구팽, 皃史, 모죽지랑가 최초 완전 해독

역사회복 2024. 11. 15. 11:21

토사구팽은 만고의 진리이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고 신당전쟁에서 승리하고, 당과 평화적 관계를 맺은 후 화랑도는 왕에게 눈엣가시가 되었다. 화랑의 대장은 진골 출신이다. 성골은 아니지만, 힘으로 왕이 된다고 하면 백성들이 정통성이 없다고 부인하기는 어려운 신분의 사람들이다. 진골도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화랑도라는 전우애로 뭉친 전사집단이 전쟁 시에는 보물이었지만, 평화가 찾아 오자 왕실에게는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681년 김흠돌의 반란(?)을 계기로 왕실은 관련되지도 않은 모든 화랑도들도 차근차근 숙청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흠돌은 자기 딸의 아들이 태자가 되게 하려 한 것이지 자기가 왕이 되려 한 것이 아니므로 엄밀히 모반이라 하기도 어렵다. 화랑도 숙청 과정에서 죽지랑도 힘을 잃었고, 죽지랑의 부하였던 9등급 벼슬인 득오도 6등급 벼슬인 익선의 모사(皃史, 사적인 부하)가 되어 익선 개인이 부과하는 노역(강제 복무)에 종사하게 되었다.

죽지랑은 득오도 늙었으므로 강제복무하다가 죽을 것을 염려하여 득오를 빼오려고 익선에게 갔는데 익선은 재물을 아주 많이 받고서야 (죽지랑이 딱하여 이 소식을 안 다른 관료들이 재물을 익선에게 준 것임) 득오에게 휴가를 허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왕실은 익선을 죽이려 하였는데, 익선이 도망 가자 모량리 전체의 벼슬을 막아버렸다.

익선의 행동은 신라의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모사는 익선이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도가 지나쳤다. 당시 신라인들에게는 김유신과 함께 대업을 완수한 죽지 장군도 영웅이었다. 왕실도 죽지 장군에게는 아무 죄가 없지만, 왕실의 안위를 위해서 죽지 장군을 숙청한 것을 알고 있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노년의 죽지랑이 겨우 6등급에 불과한 익선에게 몸소 찾아와서 득오의 휴가를 부탁했음에도 익선은 죽지랑이 끈 떨어진 연이라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했던 것이다.

모죽지랑가는 이러한 배경과 皃史제도를 알지 못하면 해독할 수 없다. 기존의 견해는 皃史를 모습이라 착각하여 나름대로 앞뒤가 연결되지도 않는 각자의 소설을 창작하고 있다. 일인 소창진평과 이오십보 소백보이면서 지들끼리 천재니 위대한 업적이니 하면서 웃기고 있다.

去隐 春 皆理米                               간 봄 개리ᄆᆡ

毛冬 居叱沙 哭屋尸 以 憂音           모ᄃᆞᆯ 것샤 울올 이 시름

阿冬音乃叱 好支賜烏隐                 아ᄃᆞᆯᄋᆞᆷ곳 고히시온

皃史年數 就音 墮支行齊                皃史年數 닐음 헐히녀져

目 煙廻於尸 七史 伊衣                   눈 ᄂᆡ돌얼 七史 이ᄋᆡ

逢烏支 惡知 作乎下是                    맛보기 앗디 지소아리

郞也 慕理尸 心未 行乎尸 道尸       郞야 그릴 ᄆᆞᄉᆞᄆᆡ 녀올 길

蓬次叱 巷中 宿尸 夜音 有叱下是   다보ᄌᆞᆺ 굴헝ᄒᆡ 잘 밤 잇사리

 

간 봄 추억하여 정리하니

(죽지랑이 세상에) 못 계셔 울 이 시름

 

사적으로도 사랑하심(이)

皃史年數 채움 무너뜨려갔네

 

눈 내두를 칠년의 사역에선

만날 기회를 어찌 만드리

 

郞을 그릴 마음에 다녀갈 길

다북쑥 거리에서 잘 밤 있으리

 

1) 皆理米: ‘가리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개리다’이다. 따라서 皆理米는 지난 봄을 ‘추억하며 정리하니’의 의미가 된다.

2) 居叱沙: 강길운은 在를 신라어로 ‘거즈’나 ‘거스’라 하였다 한다. 강길운을 따라서 ‘거스시아>것샤’로 읽고 ‘계셔’로 풀이한다.

3) 以 憂音: 以는 지시대명사 此의 대용으로 볼 수 있다.

4) 阿冬音乃叱: 阿冬音은 ‘아ᄃᆞᆯᄋᆞᆷ’으로 읽는다. ‘아ᄃᆞᆯᄋᆞᆷ’이 ‘아름’으로 변한다면 ‘아ᄃᆞᆯᄋᆞᆷ’은 ‘私적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乃叱은 김완진을 따라, 乃의 훈인 ‘곳’으로 읽으며, 중세 자료들은 乃가 ‘-사’에 해당되는 것이라 하므로 강조의 의미로 본다.

5) 好支賜烏隐: 好는 美(좋다)와 愛(사랑하다)의 뜻을 가진다. 好支의 好는 ‘사랑하다’의 의미로 보아, ‘고히’로 볼 수 있고 ‘고히’는 나중에 ‘괴’로 변한다. 따라서 好支賜烏隐은 ‘고히시온’으로 읽고, 동명사형으로 보아 ‘사랑하심’으로 풀이한다. 烏는 의도형 어미이다.

6) 皃史年數: 皃史는 신라 사뇌가에서 4번 나온다. 현재 통설은 皃史를 ‘즈ᅀᅵ’로 읽으며 ‘모습’이나 ‘모습이’로 해독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독하는 경우 앞뒤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皃史를 ‘거짓 관리’ 즉 私的 부역자(負役者)로 추정한다. 皃史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나 급간(9등급) 득오는 아간(6등급) 익선의 皃史가 되어 죽지랑에게 인사할 시간도 없이 부산성으로 가 익선의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익선은 죽지랑이 부탁해도 득오에게 휴가를 주지 않았다. 즉 신라의 법제상 익선이 득오의 노동력을 완전히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익선은 막대한 재물을 받고서야 득오에게 휴가를 주었다. 모죽지랑가에 의하면, 휴가 후에, 득오는 죽지랑의 노력으로 7년의 皃史 기간이 단축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득오는 죽지랑에게 고마워하였고, 모죽지랑가에서 보이듯이 皃史에서 벗어난 후 죽지랑의 묘소에 참배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7) 就音: 就에 ‘이루다’나 ‘마치다’의 뜻이 있으므로 ‘닐음’으로 읽고, 사역 연수를 끝까지 채운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8) 墮支行齊: 墮는 훼손하다의 뜻이 있다. 支는 연결어미로서 ‘어/아’ 정도의 의미가 있다. 齊는 서술형(평서형) 어미이다. 따라서 ‘헐히녀져’로 읽고 ‘헐어가다’ 즉 ‘무너트려가다’로 풀이한다.

9) 煙廻於尸: 煙의 훈이 ‘ᄂᆡ’이므로 ‘ᄂᆡ돌얼’로 읽고, ‘내두를’로 풀이한다.

10) 七史: 七史는 ‘칠년의 사역’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1) 伊衣: ‘이ᄋᆡ’로 읽고 ‘이에’ 즉 ‘칠년의 사역 상황에서’로 풀이한다.

12) 逢烏支: 김완진을 따라 ‘맛보기로 읽고 ‘만나기’로 풀이한다.

13) 惡知: ‘앗디’로 읽고, ‘어찌’로 풀이한다.

14) 作乎下是: ‘지소아리’로 읽고 ‘만드리’로 풀이한다. 김완진은 목적어가 ‘맛보기’이므로 ‘일오아리’로 읽어야 한다고 하나, 득오가 죽지랑의 묘소에 찾아가는 것을 ‘만나기’라 표현한 것이므로 만남을 이룬다고 하기보다는, 만남을 만든다고 봄이 타당하다.

15) 郞也: 감탄 호격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郞이 목적어이므로 목적어를 강조하는 조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6) 蓬次叱 巷中: 신재홍을 따라 ‘다보ᄌᆞᆺ 굴헝ᄒᆡ’로 읽는다. 󰡔자회(字會)󰡕에 ‘蒿’는 ‘蓬’과 같이 ‘다복’으로 나와 있어, ‘다보ᄌᆞᆺ 굴헝(다북쑥 거리)’은 蒿里(무덤)의 번역어로 볼 수 있다.

 

 


『향가 등 우리 고시가 완전 해독』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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