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백제 위세품이 발견되어도 백제 영토가 아니라는 강단유사사학

역사회복 2024. 7. 1. 22:10

 

백제 위세품이 발견되어도 백제 영토가 아니다

강단유사사학이 기문국이라 주장하는 남원의 고분에서 백제의 금동신발, 청동거울, 계수호가 출토되었다. 지방세력에게 하사하는 위세품이 백제의 것이라면 당연히 그 지역은 백제가 지배한 지역이지 가야일 수가 없다. 충청도 전라도 모두 백제의 위세품이 발굴되므로 처음부터 백제의 영토였다. 강단유사사학은 같은 위세품이 발견되어도 조선총독부의 소설에 따라 충청도는 백제, 나주는 마한, 기문은 임나=가야라 주장한다.

그들이 백제 영역이 아니라고 사기 치는 곳에서 발굴되는 백제 위세품은 그 지역의 독립국이 백제와 교섭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세품은 백제의 지방통제방식이므로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열도 등 백제의 위세품이 나온 곳도 모두 백제의 영토가 아니라 백제와 교섭한 독립국이 되어 백제의 영토는 없어질 것이다.

강단유사사학은 토기와 무덤의 구조 등을 근거로 남원 고분을 가야계 고분이라 하면서 남원을 가야라 주장한다. 토기나 무덤의 구조는 지배세력이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토착적 문화이다. 토기나 무덤양식이 같아도 지배자에 따라 백제가 지배한 곳은 백제가 되고, 가야가 지배한 곳은 가야가 된다. 백제와 신라의 지배층은 韓에서 왔고, 가야의 지배층은 新나라에서 왔는데, 이들이 온다고 모든 문화가 지배층의 문화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즉 토기 귀걸이 등 생활용품 등과 무덤의 구조는 지배세력이 달라진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토착적 문화이며, 토기나 무덤양식이 같아도 지배자에 따라 백제가 지배한 곳은 백제가 되고, 가야가 지배한 곳은 가야가 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강단유사사학이 임나=가야의 것이라 사기 치는 모든 유물이나 유적은 한반도 남부식이라 해야 타당하다. 가야 토기가 아니라 한반도 남부식 토기라 해야 하고, 가야 무덤이 아니라 한반도 남부의 토착 무덤 형식이라 보아야 한다. 백제식 토기로 변경된다는 것도, 백제의 중앙에서 유행하던 토기가 지방에까지 유행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이를 영토가 가야에서 백제로 바뀌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

그들이 백제 위세품이 발견되어도 백제가 아니라고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치는 이유는, 전술한 바와 같이 후지노기 후나야마 등 열도의 고분에서도 백제의 위세품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나라와 구주가 모두 백제의 영토였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조선총독부 소설에 무한한 충성을 다하는 그들은 코미디인 줄 알면서도 사기를 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