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는 단군을 제단 단(壇)자, 壇君으로 표기한다.
제왕운기는 단군을 박달나무 단(檀)자, 檀君으로 표기한다.
신단수도 삼국유사는 神壇樹로 표기하고, 제왕운기는 神檀樹로 쓴다.
고조선 이전은 제정일치의 사회였다. 고조선도 단군의 명칭으로 보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제정일치의 사회였다. 제단 위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이 임금이다. 따라서 檀君이 아닌 壇君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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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인 단재(丹齋)신채호(申采浩) 선생의 저서 ‘조선상고사’는 시종일관 제단 단(壇)자 ‘壇’君으로 기재하고 있다. 김용섭 교수도 ‘농업으로 보는 한국통사’에서 ‘壇’君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920년대에 발행되던 동아일보 역시, 壇君으로 표기하고 있다. 최남선(崔南善) 선생도 당시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壇君을 쓰고 있다.
이용길 /서귀포문화원문화대학장 ․ 제주언론인클럽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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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도 神壇樹가 타당하다.
옛날에 제단에 나무를 심었다. 신단수가 당산나무의 기원이다. 당산나무 주위에 돌을 쌓는 것은 제단의 의미가 있다. 신단수는 제단의 나무이다. 신단수를 통해 사람들은 하늘과 교감한다.
신단수로 박달나무가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단군과 신단수의 단자에 혼동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신단수가 반드시 박달나무여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단군과 신단수 모두 제단 단자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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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부근 만주족 마을에서 황철나무(Populus suaveolens Fisch. ex Loudon)를 신목으로 숭배하는 모습: 버드나무과로 수피가 회색에서 흑갈색으로 변함. http://www.redian.org/archive/13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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