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의 신라7국은 열도에 있었다.
조선총독부와 그를 승계한 강단유사사학은 가야=임나라고 하면서 「일본서기」의 이야기를 한반도 남부의 이야기로 날조하고 있다. 그들이 가야=임나라고 하는 주장은 「일본서기」신공 49년 이야기의 날조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두 탁순에 집결하여 신라를 공격하여 깨뜨렸다. 그리하여 비자발(比自㶱), 남가라(南加羅), 탁국(㖨國), 안라(安羅), 다라(多羅), 탁순(卓淳), 가라(加羅) 7국을 평정하였다.” [俱集于卓淳, 擊新羅而破之. 因以, 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 七國.]
신라를 깨트렸으므로 정복한 땅 즉 7국(일곱 마을)은 신라여야 한다. 최재석은 이들의 날조를 간파하고 일찌기 이들 7국을 신라 7국이라 올바르게 해석하였다. 그런데 강단유사사학은 '因以'를 '그리고'로 오역하여 신라를 깨트리고 신라 옆의 임나=가야 7국을 정벌하였다고 날조한다. [동북아역사넷(http://contents.nahf.or.kr),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전라도천년사」는 '因以'를 그리하여로 해석하지만, 7국은 가야7국이라고 하여 내용은 강단유사사학과 동일하게 해석한다.
강단유사사학에 의하면 이들 7국은 가야의 영역인데, 이들 7국의 영역이 모두 신라에 속했던 시기는 없다. 특히 강단사학은 남가라를 김해라고 주장하는데, 김해가 신라의 영역이었던 시기는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일본서기」 7국을 문자 그대로 신라 7국으로 해석하면 「일본서기」의 임나와 신라를 한반도 남부의 신라와 가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신라 7국을 임나 7국으로 강변하였다.
위 이야기의 7국을 임나 7국이 아닌 신라 7국으로 보면, 그 뒤에 나오는 「일본서기」의 모든 이야기들도 열도에 관한 이야기가 되며 임나는 가야와 같은 말일 수가 없게 된다.
임나가 가야일 수 없는 이유는 신라 7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임나의 북쪽에는 바다가 있는데[任那者去筑紫國, 二千餘里.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가야의 북쪽에는 바다가 없다. 가야가 망한 후에도 「일본서기」에서는 647년까지 임나가 외교와 전쟁을 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임나 4현은 닭과 개가 왔다갔다 하는 작은 마을이므로 전라남도 동부라는 광대한 지역이 될 수 없다.
강단유사사학이 임나=가야라 하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면서 일본서기의 이야기를 한반도 남부의 이야기라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조선총독부 소설에 대한 뜨거운 충성에 기반하는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다. 따라서 "「전라도천년사」가 「일본서기」를 인용하여서 문제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라도천년사」에 대한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전라도천년사」는 「일본서기」를 날조해석하여 조선총독부의 소설을 우리 역사라 주장하면서 우리 역사를 말살시키고 있으므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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