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료
ㅇ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過沃沮千有餘里,至肅慎氏南界,刻石紀功
ㅇ 『양서』 「동이전」,고구려조,
絕 沃沮千餘里,到肅慎南界,刻石紀功
ㅇ 『북사』 「고구려전」
絕 沃沮千餘里,到肅慎南,刻石紀功
ㅇ 『資治通鑑』 卷75, 魏紀 7, 正始7年,
過沃沮千有餘里, 至肅愼氏南界, 刻石紀功而還
모든 사서가 관구검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옥저를 지나(過) 또는 가로질러(絕) 천여리를 가서 숙신의 남계에 공을 기록하였다는 내용
ㅇ 관구검기공비가 집안 판석령에서 발견되었다
2. 강단유사사학의 똥설
강단유사사학은 오늘날 함경남도 함흥 일대는 동옥저, 두만강 하류 유역은 북옥저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삼국사』 고구려 낙랑국 정벌에 대한 기사에 대한 주석. (2022.2.14. 현재)
강단유사사학은 고구려의 수도는 졸본(환인 오녀산성), 국내성(집안 평지), 환도성(집안 산성자산성), 평양 순으로 이동되었다고 한다.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100500&code=kc_age_10
동천왕은 환도성에서 옥저로 도망가므로, 강단유사사학에 의하면 집안의 산성자산성에서 한반도 동해안으로 가는 것이 된다. 추격군은 옥저를 가로지르면 동해바다로 가게 되는데 어떻게 바다로 천리를 가는지 궁금하다. 바다로 천리를 갔는데 집안에서 관구검기공비가 발견되므로 그들은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닥터후의 공중전화박스를 타고 갔거나, 갑작스런 시공간의 변형으로 웜홀을 통과했던 것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집안 서쪽 1,000여 리에 옥저가 있었고 그 서쪽에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양서』 「동이전」, 『북사』 「고구려전」, 『자치통감』이라는 사서와, 관구검기공비를 무시하고 옥저의 위치와 고구려의 강역과 환도성의 위치에 관해 일제가 만든 소설을 추종하고 있다.
3. 옥저와 환도성의 위치

북옥저를 지나 천여리를 오면 집안이다. 조위군이 가로지른 옥저는 북옥저이다. 환도성은 북옥저의 서쪽에 있어야 하므로 북경에서 당산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필자는 북경 동쪽의 옥전현(玉田縣) 중가산촌(仲家山村) 동북쪽 옆의 산성으로 추정한다. (세 옥저와 고구려의 수도에 대해선 필자의 한 상고사 참조)
4.
강단유사사학은 모든 사서가 옥저가 세 개라 하며, 중국의 사서들이 하나같이 옥저를 지나 천여리를 와서 집안에 이르렀다고 해도 한반도 동해안에만 옥저가 있고 환도성이 집안에 있었다고 사기를 친다. 환도성이 집안에 있었다는 주장은 중국의 사서들과 관구검기공비에 의하면 도저히 설명히 불가능함에도 입 닫고 아무 문제가 없는 척 어거지를 쓴다. 이러한 침묵을 그들은 묵언수행이라고 할지 모른다.
똥을 많이 처먹으면 머리가 똥이 되므로 강단유사사학과 같은 행태를 보일 것이다.
[한 상고사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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