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 倭나 大倭(大和)는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되어 있고, 대왜가 야마토로 발음될 수도 없다. 예군 묘지명에서 일본은 백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서기」의 일본은 백제이지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된 大倭(大和)가 될 수 없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열도를 지방행정구역으로 지배하다가,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별칭인 ‘일본’으로 독립하면서 열도인을 다스릴 목적으로 가공의 역사를 기술한 책으로 용비어천가와 같은 문학서이다. 열도에 왜계의 야마토 정권이 성립한 적이 없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나오는 야마일(邪馬壹) 또는 야마대(邪馬臺)국은 가야계의 나라로 왜가 아니다.
일제유사사학은 일본이 한국이었음을 부정하기 위해 야마토왜라는 가공의 왕조를 창작하였다. 일제유사사학이 만든 일본고대사는 소설이다. 그들은 「일본서기」를 야마토왜 왕조의 근거로 제시하나, 「일본서기」 어디에도 야마토왜 왕조는 없고, 오히려 왜나 대왜(대화)는 일본의 속국이었음이 일관성 있게 기록되어 있다. 전술하였듯이 大倭(大和)는 ‘다이와’ 정도로 읽을 수는 있으나 야마토라고 읽을 수는 없는데, 일제유사사학은 가야계의 야마대국을 왜계의 국가로 날조하기 위해 大倭(大和)를 야마토라 읽고 있다. 즉 大倭(大和)는 그 이름부터 날조된 것이다.
「일본서기」는 신라에 쫓겨난 백제인들의 정신 승리를 위한 판타지소설이면서, 과거의 영광스런 백제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열도의 주민을 새롭게 다스리기 위해 제작한 통치신화이다. 열도에서 최초로 독립된 고대국가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였다. 과거 백제관료인 왜왕은 백제왕으로부터 수여받은 삼종신기가 정통성의 근거가 되었는데 이제 백제가 없어졌으므로 정통성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민도가 달라졌으므로 과거처럼 하늘과 새와 알로 하늘로부터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일본왕국은 오래 전에 하늘의 뜻에 따라 건국한 강력한 나라로서 많은 나라로부터 무수한 조공을 받고, 주변 소국을 정복하여 다스린 열도 내 황제국이었으며, 현재의 왕은 그러한 강력한 왕국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을 갖고 있으므로 모든 열도 주민들은 현재의 왕에게 충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날조 역사서를 만들었다.
따라서 「일본서기」는 역사서가 아니라 관제 문학서이다. 조선이 만든 용비어천가와 그 성격이 같다. 물론 「일본서기」는 용비어천가에 비해 문학성도 없고, 사실의 조작도 심하여 그 품격이 매우 떨어지나, 이는 시대적 차이와 문화적 수준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일본서기」는 문학서이지만 역사서 형식이어서, 사실로 보이는 것들로 내용을 채워넣어야 했다. 그래서 창작자는 완전히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실제 인물과 사건을 토대로 한 가공의 기사를 만들기도 하였다. 창작 시 열국의 이주민들이 세운 마을국가들인 가라 임나 안라 백제 신라 고구려 모한 진한 왜 등을 백제 담로와 백제의 파견관료인 백제 왜왕이 지배하는 이야기와 백제 본국에 관한 이야기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당시까지 남아 있던 백제 본국의 역사서도 참고하였기 때문에 열국의 역사가 일부 기술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서기」는 그 제목이 말하듯이 일본국에 관한 책이다. 백제의 영토였던 열도의 백제 지배세력이 망한 백제를 지우고 일본으로 독립하기 위해 작성한 책이다. 백제의 열도 지배 사실을 숨기기 위한 책이므로 역사서가 아니다. 물론 사실이 포함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백제의 담로나 백제의 왜왕이 아닌 일본국의 왕(천황)과 관련되어 기술된다면 천황이 가공이므로 사실이 아니게 된다.
「일본서기」의 왕(천황)은 왜(大和) 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일제·강단유사사학은 「일본서기」의 일본국 천황을 어떤 근거도 없이 야마토왜왕으로 주장하고, 「일본서기」가 야마토왜(大和)의 역사책이라 주장한다. 일제·강단유사사학은 2세기 구주의 가야계 야마대국에서 야마토라는 국명을 취하면서, 열도가 3세기부터 왜(예)집단이 야마토라는 왕조를 중심으로 가야 백제 신라의 영향 없이 독립적인 나라로 출발하였다고 날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왜국이나 대왜는 천황에 복속한 국가라 명시하고 있다. 대족언천황을 왜국의 산변도상릉에 장사 지내며, 천황이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며, 관인이 왜국에서 칼을 도난당하는 등 일본과 왜를 구별하고 있으며, 大倭 등 속국에 기인을 바치라 하고, 大倭에 사자를 보내고, 대왜로 천도하는 등 일본과 대왜도 구별하고 있다. 「일본서기」는 백제 관료인 왜왕을 천황으로 상정하고 있으므로 왜집단의 나라는 일본의 속국은 될 수 있으나 일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강단유사사학은 「일본서기」를 문언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서기」 문언에 의하면 야마토왜 왕조는 가공임이 확인됨에도 그들은 총독부 교시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다. 야마토왜가 가공이므로, 야마토왜의 한반도 진출이라는 야마토임나설도 가공이다. 강단유사사학은 그들이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그들의 주장을 제시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일본서기」 어디에서도 그들 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일제유사사학에 충성하기 위해 「일본서기」를 핑계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일본을 왜라고 날조하지 않으면 일본은 백제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백제가 망하자 일본국이 열도 최초의 고대국가로 성립되었다. 일본국 이전 열도는 백제의 지방행정구역으로 왕궁도 도성도 없었다. 예군 묘지명에서도 일본이 백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于時日本餘噍, 據扶桑以逋誅’는 당이 백제를 공격할 때 일본의 남은 무리들이 열도에 의거하여 죽음을 피해 달아났다는 내용이므로 일본은 백제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본서기」는 백제서기이다. 일본이 백제라는 것이 드러나면 열도의 참역사가 드러나므로 일제유사사학은 이를 숨기기 위해 일본을 야마토왜로 날조했다.
일제유사사학 날조의 핵심은 야마토가 한반도 남부에 진출하였다는 야마토임나설이 아니라 일본 즉 열도백제를 야마토왜로 변조한 것이다. 일본이 야마토왜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으므로, 야마토임나라는 더 큰 날조를 통해 이를 덮으려 하였다. 즉 야마토임나설은 야마토왜의 가공성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대마도를 반환하지 않기 위해 독도를 문제삼는 것처럼, 야마토왜의 날조를 숨기기 위해, 일제유사사학은 야마토왜의 한반도진출이라는 더 큰 날조를 실행하였다.
[한 상고사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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