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이장가 해독
여러분, 고려의 16대 왕 예종이 직접 지은 아주 특별한 향가를 아시나요? 바로 <도이장가>입니다. ‘두 장군을 추모하는 노래’라는 뜻이죠.
서경( 즉 현재의 요양)을 순시하던 예종은 팔관회에서 나무로 만든 두 사람의 인형을 보게 됩니다. 그 인형의 주인공은 바로 고려 건국 초, 태조 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바친 신숭겸과 김락 장군이었죠. 왕이 두 충신의 넋을 기리며 직접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노래의 시작 1,2행은 두 장군의 지극한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임금을 온전하게 한 마음(主乙 完乎白乎 心), 알려져 하늘에 미치니(聞際 天乙 及昆)”
공산 전투에서 태조 왕건이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장군은 주군을 ‘온전하게’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예종은 그들의 희생이 단순히 역사 속에 묻힌 것이 아니라, 널리 알려져(듣져) 저 높은 하늘 끝까지 닿았다고 찬탄합니다.
完乎白乎오ᅀᆞᆯ오ᄉᆞᆸ온에서 오ᅀᆞᆯ은 온전하다이고, 오는 사동접미사, ᄉᆞᆸ은 객체 높임 선어말어미입니다. 따라서 오ᅀᆞᆯ오ᄉᆞᆸ온은 ‘온전하게 한'의 뜻이 됩니다.
聞際문제는 황선엽을 따라 ‘듣져’로 읽습니다. 聞문에 ‘알려지다’의 뜻이 있으므로, 聞際문제를 ‘알려져’로 풀이합니다.
두 장군의 충성이 세상에 알려져 하늘(天)에 닿았다는(及) 논리적 연결을 찾아내는 것이 해독의 첫 단추입니다.
3행 去賜矣中거사의중은 ‘가신ᄋᆡᄒᆡ’로 읽습니다. 신라 향가에서 矣의가 처격, 속격, 주격 조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어느 경우로 보아도, 여기에서는 앞에 隱은이 생략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中중은 처격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신ᄋᆡᄒᆡ’로 읽고, 의미는 직역하면 ‘가심에서’ 즉 ‘가신 상황에서’이므로 현대어로는 ‘가시되’가 됩니다.
麻又欲‘마과’는 ‘마ᇨ다’에 한정법 어미 ‘오’와 의도형 어미 ‘과’가 더해진 형태라 생각됩니다.
아리 자급 피가(阿里 刺及 彼가): 이 구절은 향찰 해독의 백미입니다. ‘阿里’아리를 '아름답게',‘刺及’자급을 '꾸미다'의 고어인 ‘ᄭᅮ밋’으로 재구합니다. 팔관회 행사장에 세워진 인형, 즉 가상(假像)의 공신들이 화려하게 꾸며진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8행 隱은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입니다. 跡烏隱자초ᄋᆞᆫ은 목적어입니다. 現乎賜丁나토신뎌의 丁뎌는 의문형 어미입니다. 제망매가나 안민가에서도 발견되는 이 글자는 의문의 형식을 빌린 강한 감탄을 나타냅니다. "나타내시는가?" 의문형어미로 인형을 통해 살아난 장군들의 곧은 자취(자초)를 목격한 왕의 전율을 복원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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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장가>는 왕이 신하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입니다. 죽음으로 임금을 지킨 신하와, 수백 년이 지나서도 그 이름을 잊지 않고 노래로 불러낸 임금. 비록 몸은 사라져도 그 ‘곧은 자취’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예종의 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향찰 해독은 단순히 한자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아닙니다. ‘사(賜)’, ‘백(白)’, ‘정(丁)’ 같은 글자 속에 숨겨진 고대인의 높임법과 감정의 깊이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천년 전 예종이 인형을 보며 느꼈던 그 뭉클한 감동은, 우리가 이 암호 같은 글자들을 정확히 해독해 낼 때 비로소 우리 곁으로 다시 살아 돌아옵니다. 오늘 살펴본 이 '곧은 자취'의 해독이 여러분에게 고대 국어의 매력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길 바랍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 책 ‘한국학 기초’를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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