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보현십원가-항순중생가 해독

역사회복 2026. 4. 8. 08:59

 

항순중생가 해독

 

 

 

안녕하세요.

 

여러분, 불교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비유를 꼽으라면 단연 ‘보리수와 중생’의 관계일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노래는 보현행원품의 아홉 번째 원력, <항순중생가>입니다. ‘항상 중생의 뜻에 순종한다’는 이 놀라운 선언이 향가 속에서 어떻게 꽃피었는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죠.

 

 

먼저 1행부터 4행까지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보리수왕(覺樹王)은 미혹함을 뿌리 삼으시니, 대비(大悲)의 물로 적시어 아니 시들게 가꾸어 드릴 테야.”

여기서 보현보살은 충격적인 통찰을 보여줍니다. 깨달음의 나무인 보리수의 뿌리가 다름 아닌 중생의 ‘미혹함(迷)’이라는 것입니다. 뿌리가 없으면 꽃과 열매가 없듯, 고통받는 중생이 없다면 부처님의 자비와 깨달음도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2행 沙音賜焉삼샨은 ‘삼으심’이라는 동명사 형태예요. 逸일은 계사 ‘이’예요. 良량은 이유의 연결어미예요. ‘이므로’, ‘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체가 “미혹함을 뿌리 삼으심이므로”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逸일을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伊이가 쓰였을 가능성이 높아서 이 해석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기존 해독은 4행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행은 不冬 萎 玉 內乎留叱䓁耶은 안ᄃᆞᆯ 이울 갓고 드료롯 ᄃᆞ야입니다. 즉 아니 시들게 가꾸어 드릴 테야입니다.

 

기존의 견해는 구체적 근거 없이, ‘이울지 아니하는 것이더라’ ‘아니 이울어 들었도다’ ‘아니 시들게 할 것이다’ ‘아니 시들게 하리라’ 등으로 원문과 무관하게 해독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해석엔 핵심어인 玉옥(가꾸다)이 빠져 있습니다. 萎위 다음에 只지가, 玉옥 다음엔 良량이 생략된 것으로 보아 해독해야 합니다. 즉 ‘不冬아니 萎只시들게 玉良가꾸어’가 됩니다.

 

5행에서 8행은 중생과 내가 하나 되는 대목입니다.

“법계 가득 구물구물할 우리도 같이 살고 같이 죽으면서, 끊임없이 지념하여 부처님께 할 듯이 공경할 테야.”

‘구물구물’이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지 않나요? 광활한 우주 속에 꿈틀대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합니다. 작가는 이 중생들과 ‘동생동사(同生同死)’하면서, 부처님을 공경하듯 중생을 공경하겠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중생을 차별하지 않고, 내 눈앞의 소외된 생명을 부처님 모시듯 받들겠다는 이 태도가 바로 항순중생의 핵심입니다.

 

마지막 낙구, 9행과 10행입니다.

“아아! 중생 편안 한다면, 부처님 다 기쁘실 것이로다.”

부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은 화려한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인 중생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곧 나무 전체의 기쁨이자 부처님의 웃음입니다.

여기서 ‘安안ᄒᆞᄂᆞᄃᆞᆫ’의 ‘-ᄂᆞ-’는 현재 진행인 상태를 뜻합니다. 지금 이 순간, 고통받는 누군가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을 가장 크게 미소 짓게 하는 일이라는 확신입니다.

 

항순중생은 내가 잘나서 남을 도와주는 시혜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나무가 뿌리에 의지하듯, 부처님과 수행자인 나 또한 중생이라는 뿌리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우주적 겸손’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 책 ‘한국학 기초’를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