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라 향가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노래는 눈이 아픈 아이를 둔 어머니가 천수관음 앞에 무릎을 고부리고 간절히 비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각 구절을 하나하나 풀어드리겠습니다.
먼저 노래 전체를 읽어볼게요.
무릎을 고부리며.
두 손바닥을 모아들여.
천수관음 앞에.
빌어 사룀도 드린다.
천 개 손의 천 개 눈을.
하나 아래에서 하나를 덜어서.
둘 흐린 나이니.
하나만은 주시라고 (빌어사룀) 드릴 테야.
아! 나에게 남기어 주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의 뿌리일까?
전체 흐름을 먼저 말씀드리면,
1행부터 4행은 기도의 자세 즉 무릎을 고부리고 두 손을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어 사뢰는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5행부터 8행은 간청의 내용 즉 천수관음의 천 개 눈 중 하나만 떼어 아이에게 달라는 부탁을 말하고 있습니다.
9,10행은 어머니의 다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자신도 그 자비를 세상에 쓰며 살겠다는 서약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천수관음의 눈을 받으면, 어머니와 그 아이는 천수관음의 눈으로 천수관음이 행하는 자비를 베풀며 살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신라 경덕왕 때, 한 여인의 아이가 눈이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분황사 천수관음 앞에 나아가 노래를 지어 빌었고, 그 결과 아이의 눈이 나았다고 전해집니다.
천수관음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음보살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살피고 구제하는 존재입니다. 천 개의 눈으로 세상 모든 곳을 보고, 천 개의 손으로 모든 이를 돕는다는 의미예요.
어머니는 바로 그 천 개의 눈 중 하나를 아이에게 달라고 빌고 있는 겁니다.
이제 한 줄씩 살펴보겠습니다.
1행부터 4행은 무릎을 고부리며 / 두 손바닥을 모아들여 / 천수관음 앞에 / 빌어 사룀도 드린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膝肹 古召旀 무루플 고브르며.
二尸 掌音 毛乎攴內良 두ᄫᅳᆯ 손바담 모호기드려.
千手觀音叱 前良中 천수관음ㅅ 알파ᄒᆡ.
祈以攴 白屋尸置 內乎多 비리기 ᄉᆞᆯᄫᅩᆯ두 드료다.
무루플 고브르며는 단순히 무릎을 구부리는 자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천수관음이 계신 쪽으로 두 무릎이 향하도록 살짝 내미는 자세라고 합니다.
'毛乎攴內良모호기드려'에서 '內良내량'은 '들여'로 풀이합니다. 두 손바닥을 가슴 앞으로 모아들이는 합장의 자세예요.
'祈以攴비리기'는 '빌어'로, '白屋尸置ᄉᆞᆯᄫᅩᆯ두'는 '사룀도'로 풀이합니다.
'內乎多드료다'는 '드립니다'로 풀이하는데, 공손하게 올린다는 표현이에요.
5행부터 8행은은, 천 개 손의 천 개 눈을 / 하나 아래에서 하나를 덜어서 / 둘 흐린 나이니 / 하나만은 주시라고 드릴 테야.
원문은 이렇습니다.
千隱 手叱 千隱 目肹 즈믄 소ᇇ 즈믄 눈흘.
一等 於 一等肹 除惡攴 ᄒᆞᄃᆞᆫ 아래서 ᄒᆞᄃᆞᆫ흘 덜악.
二 于萬隱 吾羅 두ᄫᅳᆯ 가만 나라.
一等沙隱 賜以古只 內乎叱 等邪 ᄒᆞᄃᆞᆫ산 주시곡 드룟 ᄃᆞ야.
이 네 행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어머니가 천수관음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는 부분이에요.
6행 원문에 '放'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저는 이것이 오각, 즉 잘못 쓰인 글자라고 봅니다. 6행과 10행에 같은 자리에 '放'이 나란히 나오는데, 둘 다 오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예요. 따라서 '放'을 '於'로 수정해 읽습니다.
'一等 於 一等肹 除惡攴ᄒᆞᄃᆞᆫ 아래서 ᄒᆞᄃᆞᆫ흘 덜악'은 ‘한 손 아래에서 눈 하나를 덜어서’라는 의미입니다.
'于萬隱가만'은 '흐린' 혹은 '희미한' 으로 풀이합니다.
'二 于萬隱 吾羅두ᄫᅳᆯ 가만 나라'는 '둘 흐린 나이니' 입니다. 아이의 두 눈이 모두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一等沙隱 賜以古只 內乎叱 等邪ᄒᆞᄃᆞᆫ산 주시곡 드룟 ᄃᆞ야'는 '하나만은 주시라고 기도 드릴 테야'입니다.
9,10행: 아! 나에게 남기어 주신다면 / 어디에 쓸 자비의 뿌리일까.
원문은 이렇습니다.
阿邪也 吾良 遺知攴 賜尸等焉 아야야 나아 기티히 주실ᄃᆞᆫ.
於冬矣 用屋尸 慈悲也 根古 어ᄃᆡ ᄡᅳ올 慈悲야 불휘고.
'遺知攴' '기티히'는 '남기어' 로 풀이합니다. '賜尸等焉''주실ᄃᆞᆫ'은 '주신다면' 으로 풀이해요.
'於冬矣 用屋尸어ᄃᆡ ᄡᅳ올'은 '어디에 쓸', '慈悲也 根古자비야 불휘고'는 '자비의 뿌리일까' 로 풀이합니다.
이 두 행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나에게 자비를 남겨 주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의 뿌리일까" — 만약 관음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아이의 눈을 낫게 해주신다면, 그 자비를 받은 나도 세상에 자비를 베풀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읽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아이의 눈은 천수관음의 눈이니까요.
단순히 요구하는 기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비를 받은 자신과 아이도 자비를 실천하겠다는 서약으로 노래가 마무리되는 거예요. 기존 견해는 9행과 10행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천수관음의 눈을 받는다면, 아이는 천수관음이 행하는 자비를 행하고 살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이가 어떤 자비를 행하고 살 것인가 궁금해합니다. 이는 곧 어머니와 아이가 자비를 베풀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불심과 착한 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부분을 오해하면 이 시의 핵심은 사라집니다.
이제 모든 내용을 이해한 상태로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볼게요.
무릎을 고부리며.
(천수관음을 향해 무릎을 내밀며).
두 손바닥을 모아들여.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합장하고).
천수관음 앞에.
빌어 사룀도 드린다.
천 개 손의 천 개 눈을.
(관음보살의 천 개의 눈 중에서).
하나 아래에서 하나를 덜어서.
(한 손 아래에서 눈 하나를 빼내어).
둘 흐린 나이니.
(두 눈이 모두 흐린 나이니).
하나만은 주시라고 드릴 테야.
(단 하나만이라도 주시라고 기도 드릴 테야).
아! 나에게 남기어 주신다면.
(아, 나에게 눈 하나를 남기어 주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의 뿌리일까.
(그 눈을 가진 아이는 어떤 자비를 행하며 살까?)
도천수관음가는 신라 향가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노래 중 하나입니다.
눈이 아픈 아이를 둔 어머니가 두 손을 모아, 단 하나의 눈만 달라고 비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 자비를 받는다면 자신도 세상에 자비를 베풀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어요.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과 그 간절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따뜻한 마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 책 ‘한국학 기초’를 참고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