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 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헌화가는 아주 짧은 노래입니다. 단 네 줄이에요. 그런데 이 네 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노래 안에 숨겨진 문장 구조와 당시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하나하나 풀어드리겠습니다.
1부: 노래 전체 감상
먼저 노래 전체를 읽어볼게요.
자주빛 바위 가에.
잡은 손이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딱 네 줄입니다. 누군가가 꽃을 꺾어 바치겠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 노래, 단순히 꽃을 바치겠다는 노래가 아닙니다. 문장 구조를 잘 보면, 꽃을 바치기 위한 조건이 두 가지 제시되어 있어요.
첫 번째 조건이 1,2행, 두 번째 조건이 3행, 그리고 4행에서 결론이 나옵니다.
조건1: 암소를 놓게 해주신다면,
조건2: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결론: 꽃을 꺾어 바치겠다.
이 구조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이제 배경 이야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부: 배경 — 수로부인은 누구인가
이 노래는 수로부인(水路夫人) 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에 따르면,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의 인물로, 남편을 따라 부임지로 가던 중 바닷가 절벽 위에 활짝 핀 꽃을 보고 갖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절벽이 너무 가팔라서 아무도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그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저의 수로부인 영상에서, 수로부인이가뭄을 끝내는 단비임을 논증하였습니다. 즉 헌화가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꽃을 바치는 노래가 아니라, 기우제에서 단비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이 시각으로 보면 노래 안의 세부 표현들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3부: 구절 상세 풀이
이제 한 줄씩 살펴보겠습니다.
1,2행: 자주빛 바위 가에. / 잡은 손이 암소 놓게 하시고.
원문은 이렇습니다.
紫布 岩乎 邊希 딜뵈 바오 ᄀᆞᆺᄒᆡ.
執音乎 手 母牛 放敎遣 심온 손 암쇼 놓이시고.
첫 번째 구절, '紫布'자자와 포자는 '딜뵈'로 읽습니다. 계림유사라는 고려 시대의 문헌에 '紫曰質背자와질배'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紫布자포를 '딜뵈'로 읽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구절, '執音乎심온'이 흥미롭습니다. '잡다'는 뜻이면서 어간이 'ㅁ'으로 끝나는 말이어야 하는데, 박재민의 연구에 따르면 이 말은 '심다'입니다. '심다'는 제주도 사투리로 '잡다'는 뜻이에요. 즉 '심온 손'은 잡은 손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암소를 놓는 것을 조건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노인이 꽃을 꺾으러 절벽을 오르려면 암소를 잡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노인은 수로부인에게 말하는 겁니다. 혹시 암소가 움직이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암소를 놓게 허락해 주신다면 꽃을 꺾어오겠다고요.
즉 1,2행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꽃을 바치기 위한 실질적인 첫 번째 조건입니다.
3행: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원문은 이렇습니다.
吾肹 不喩 慚肹伊賜等 나ᄒᆞᆯ 안디 붓그리시ᄃᆞᆫ.
이 구절은 두 번째 조건입니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즉 이 노인이 꽃을 바치는 것을 받아주신다면, 이라는 뜻이에요.
이 표현은 겸양의 표현입니다. 노인이 스스로를 낮추며, 초라한 자신이 꽃을 바쳐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수로부인이 단비를 상징하는 존재라면, 인간이 그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겠죠. 첫 번째 조건이 실질적인 조건이었다면, 두 번째 조건은 이처럼 예를 갖추는 표현입니다.
4행: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花肹 折叱可 獻乎理音如 곶ᄒᆞᆯ 것가 바치오림에.
'折叱可것가'는 '것가'로 읽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반영한 표기이기 때문에 글자의 음 그대로 읽는 것이 타당합니다.
마지막 '獻乎理音如바치오림에'는 어떻게 읽느냐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여러 견해가 있어요.
獻헌을 ‘받ᄌᆞᆸ’으로 읽는 견해도 있으나, 객체 존대 선어말어미는 11세기에야 사용되므로 불가능합니다. 獻헌을 ‘받’으로 읽는 경우도 있으나, ‘받’이 사용된 경우 ‘받다’와 ‘받들다’의 의미는 있어도 ‘바치다’의 의미는 없어, 불가능합니다. 獻헌을 한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당시에도 ‘헌오림에’로 말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獻헌을 바치로 읽는 것이 타당합니다.
'理리'는 화자의 의지를 나타내는 어미, '音음자'는 명사화 어미 'ㅁ', '如여'는 공손한 평서형 종결 어미로 음은 에입니다. 서술어를 명사 형태로 표현하는 구조는, 공손하면서도 사무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 네 줄이지만, 그 안에 노인의 세심한 배려와 겸손함, 그리고 수로부인 즉 단비를 향한 공경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단비에게 절벽 위의 꽃을 꺾어 바치는 것은 기우제의 사전 시나리오였을 것입니다. 무당이 수로부인이 꽃을 원한다 하면, 모인 사람들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 할 때, 늙은 농부가 나서서 헌화가를 읊고, 절벽에 올라가 꽃을 꺾는 상징적 행위를 한 후, 꽃을 제단에 바쳤을 것입니다. 이 의식은 단비가 감동하여 인간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하도록, 단비에게 늙은 농부의 정성과 인간의 단비에 대한 사모의 정을 각인시키는 절차였습니다. 인간은 단비로부터의 보답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단비가 인간과 함께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저의 책 ‘한국학 기초’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