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모죽지랑가의 진실

역사회복 2026. 3. 31. 17:34

https://www.youtube.com/watch?v=hXC0XFxMgVA

 

(5) 모죽지랑가 (득오)

 

去隐 春 皆理米 간 봄 ᄀᆡ리ᄆᆡ

毛冬 居叱沙 哭屋尸 以 憂音 모ᄃᆞᆯ 것샤 울올 이 시름

阿冬音乃叱 好支賜烏隐 아ᄃᆞᆯᄋᆞᆷ곳 고히시온

皃史年數 就音 墮支行齊 皃史年數 닐음 헐히녀져

目 煙廻於尸 七史 伊衣 눈 ᄂᆡ돌얼 七史 이ᄋᆡ

逢烏支 惡知 作乎下是 맛보기 앗디 지소아리

郞也 慕理尸 心未 行乎尸 道尸 郞야 그릴 ᄆᆞᄉᆞᄆᆡ 녀올 길

蓬次叱 巷中 宿尸 夜音 有叱下是 다보ᄌᆞᆺ 굴헝ᄒᆡ 잘 밤 잇하리

 

간 봄 추억하여 정리하니

(죽지랑이 세상에) 못 계셔 울 이 시름

 

사적으로 사랑하심()

皃史年數 채움 무너뜨려가네

 

눈 내두를 칠년의 사역, 그 상황에선

만남을 어찌 만드리

 

을 그릴 마음에 다녀갈 길

다북쑥 거리에서 잘 밤 있으리

 

皆理米: ‘가리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개리다이다. 따라서 皆理米는 지난 봄을 추억하며 정리하니의 의미가 된다.

居叱沙: 강길운은 를 신라어로 거즈거스라 하였다 한다. 강길운을 따라서 거스시아>것샤로 읽고 계셔로 풀이한다.

以 憂音: 는 지시대명사 의 대용으로 볼 수 있다.

阿冬音乃叱: 阿冬音아ᄃᆞᆯᄋᆞᆷ으로 읽는다. ‘아ᄃᆞᆯᄋᆞᆷ아름으로 변한다면 아ᄃᆞᆯᄋᆞᆷ적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乃叱은 김완진을 따라, 의 훈인 으로 읽으며, 중세 자료들은 ‘-에 해당되는 것이라 하므로 강조의 의미로 본다.

好支賜烏隐: (좋다)(사랑하다)의 뜻을 가진다. 好支사랑하다의 의미로 보아, ‘고히로 볼 수 있고 고히는 나중에 로 변한다. 따라서 好支賜烏隐고히시온으로 읽고, 동명사형으로 보아 사랑하심으로 풀이한다. 는 의도형 어미이다.

皃史年數: 皃史는 신라 사뇌가에서 4번 나온다. 현재 통설은 皃史즈ᅀᅵ로 읽으며 모습이나 모습이로 해독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독하는 경우 앞뒤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皃史거짓 관리私的 臣下로 추정한다. 皃史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나 급간(9등급) 득오는 아간(6등급) 익선의 皃史가 되어 죽지랑에게 인사할 시간도 없이 부산성으로 가 익선의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익선은 죽지랑이 부탁해도 득오에게 휴가를 주지 않았다. 즉 신라의 법제상 익선이 득오의 노동력을 완전히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익선은 막대한 재물을 받고서야 득오에게 휴가를 주었다. 3~4행으로 보아, 득오는 죽지랑의 노력으로 7년의 皃史 기간이 점차 단축된 것으로 보인다. 사역 중 죽지랑이 죽었지만, 득오는 사역 중이어 죽지랑의 묘소에 갈 수 없었다. 득오는 7~8행에서 皃史에서 벗어난 후 죽지랑의 묘소에 참배할 계획을 말하고 있다.

就音: 이루다마치다의 뜻이 있으므로 닐음으로 읽고, 사역 연수를 끝까지 채운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墮支行齊: 는 훼손하다의 뜻이 있다. 는 연결어미로서 /정도의 의미가 있다. 는 서술형 어미이다. 따라서 헐히녀져로 읽고 헐어가다무너트려가다로 풀이한다.

煙廻於尸: 의 훈이 ᄂᆡ이므로 ᄂᆡ돌얼로 읽고, ‘내두를로 풀이한다.

七史: 七史칠년의 사역을 뜻하는 것이다.

伊衣: ‘이ᄋᆡ로 읽고 이에칠년의 사역 상황에서로 풀이한다.

逢烏支: 김완진을 따라 맛보기로 읽고 만나기로 풀이한다.

惡知: ‘앗디로 읽고, ‘어찌로 풀이한다.

作乎下是: ‘지소아리로 읽고 만드리로 풀이한다. 김완진은 목적어가 맛보기이므로 일오아리로 읽어야 한다고 하나, 득오가 죽지랑의 묘소에 찾아가는 것을 만나기라 표현한 것이므로 만남을 이룬다고 하기보다는, 만남을 만든다고 봄이 타당하다.

郞也: 감탄 호격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 목적어이므로 목적어를 강조하는 조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蓬次叱 巷中: 신재홍을 따라 다보ᄌᆞᆺ 굴헝ᄒᆡ로 읽는다. 󰡔자회(字會)󰡕과 같이 다복으로 나와 있어, ‘다보ᄌᆞᆺ 굴헝(다북쑥 거리)’蒿里(무덤)의 번역어로 볼 수 있다.

 

*** 皃史 ***

신라의 신분제는 크게 士衆制 또는 士庶制 즉 벼슬할 수 있는 사람과 평민의 두 단계로 나뉜다. 평민은 법적으로 귀족의 모사가 되어 노역을 바쳤다. 귀족은 자발적으로 유력자의 모사가 되어 충성을 바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들은 私臣으로서 충성의 대상이 왕이 아닌 개인이었다. 皃史는 귀족과 평민을 막론하고 특정 귀족 개인의 신하를 포괄하여 말하는 용어로 보인다.

득오가 밭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득오는 죽지랑 숙청 과정에서 평민으로 강등되었고 평민의 지위에서 익선의 법적인(강제적인) 모사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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