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대국민 사기극으로 전락한 「전라도 천년사」 온라인 시민설명회(1), 조법종.

역사회복 2023. 8. 15. 23:44

이 글에 보이는 사진들은 모두 강단유사사학 설명회자료임

1. 고조선 관련

ㅇ 조법종은 단군조선을 부정하지 않았다고만 말하면서 건국연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감

ㅇ 「전라도 천년사」는 기원전 8~7세기에 '조선'이 청동기 단계에서 등장하며, 기원전 5~4세기에 ‘조선연맹체’가 형성되고, 기원전 3~2세기에 서북한 지역에 국가를 형성한다고 함. 단군조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군신화는 고조선이 고대국가의 지배체제를 형성하고 난 이후에 지배층에서 만들어진 건국 신화이지 실재한 역사는 아니라고 함.

ㅇ 조법종은 발표자료에 고조선 건국연대가 표시된 사료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가 이 자료의 내용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청중을 속이기 위해서 제시한 자료로 보임. 조법종의 '건국신화만으로 초기 고조선 모습을 해석하기 어렵다'는 말은 그가 제시한 사료의 내용을 부인하면서 서기전 24세기에 건국된 고조선을 부정하는 말임.

ㅇ 조법종은 「전라도 천년사」가 고조선의 영역을 축소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위의 지도들을 제시

ㅇ 위 지도는 홍산문화가 발견된 요서지역을 '요령식동검문(산융 동호)' '북방식 청동기문화'라 하여, 한반도 남부는 진(삼한)이라 하여 고조선의 영역에서 제외하고 있는 지도임. 자기들이 고조선으로 인정하지 않는 영역도 그려 놓은 지도를 제시하면서 마치 그 지도에 제시된 전 영역이 고조선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설명회가 대국민 사기극임을 드러냄. 이렇게 말하면 조법종은 자기는 지도의 전 영역이 고조선이라 말한 적은 없고 청동기문화의 범위를 설명한 것이라고 거짓말할 것임.

ㅇ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이 고조선의 영역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임에도 이들은 고조선의 중심지역인 요서 홍산문화 지역을 고조선에서 제외하고, 중국 북동부인 하북성과 산동성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도 무시하고, 산동성에서 중국 동해안을 따라 중국 남부까지 발견되는 고인돌도 제외하면서 고조선 강역을 축소시키지 않았다고 사기치고 있음. 칼돈이 나오는 후기 고조선의 지역인 산서성까지 고려하면 그들이 제시하는 고조선은 고조선의 영역이라 할 수도 없음

ㅇ 조법종은 영암 장천리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값이 예외적인 것이므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 고고학계에서도 사용할 수 없는 측정값이라 했다고 주장. 그러나 강단유사고고학은 강단유사사학과 같이 조선총독부 소설에 충성하는 집단이므로 이들의 해석을 믿기는 어려움. 강단유사사학과 강단유사고고학은 조선총독부 소설인 요동지역 고조선 서기전 7-8세기, 따라서 한반도 남부의 청동기는 그보다 수 세기 후의 것이라는 소설을 전제하고 모든 자료를 날조하므로 이들의 말을 믿을 수 없음.

과거 북한의 연구에 의하면 한반도 서북지방에서 서기전 2500년경부터 고인돌이 등장. 대동강문화론이 발표된 이후 북한은 고인돌 연대의 상한을 서기전 4천년기 후반으로 인식하고 있음. 남한에서는 조법종이 부정하는 영암 장천리 이외에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 유적이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 의해 서기전 24∼23세기의 것으로 확인됨.

ㅇ 조법종이 제시하는 부분. (전라도천년사 3권 48-49쪽)

"사기 조선열전 등 기록을 보면 기원전 4-3세기 고조선 연맹체로 진번 임둔 등 정치세력이 있었으며 이는 모두 고조선의 어느 한 지역을 차지하던 소국이었다고 한다. 이 소국들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고인돌과 돌널무덤을 중심으로 한 비파형동검 문화 마지막 단계의 문화유형이 혼하 유역, 요동반도지역, 서북한지역 등 크게 세 지역에 나누어 나타나고, 그 각각의 유형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세 문화유형은 독자적으로 발전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파형동검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ㅇ 조법종은 위 부분을 제시하면서 고인돌을 고조선의 대표유적으로 서술하였다고 거짓말함. 그가 제시한 부분을 수 십번 읽어도 고인돌이 고조선의 대표유적이라 하였다는 것을 발견하기 어려움. 「전라도 천년사」가 고인돌이 고조선의 대표유적이라 하였다면, 「전라도 천년사」는 왜 한반도 남부는 고조선의 영역이 아닌 진(삼한)의 영역이고, 산동성 등 중국 동해안은 왜 고조선의 영역이 아니라 기술하였는가?

--- 소결 ---

ㅇ 고조선은 하가점 하층 문화에 의해 서기전 24세기 건국이 인정되고, 고조선은 전삼한으로, 삼국지 후한서가 기술하는 방사천리의 나라였음. 홍산문화와 한반도 유물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값,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삼국지, 후한서 등 수많은 사서에 의해 고조선은 서기전 24세기에 요서지역의 진한을 중심으로 요동과 한반도의 마한, 중국 동해안의 번한을 포괄하는 방사천리의 나라로 실재하였음에도 강단유사사학과 강단유사고고학은 「전라도 천년사」에서 조선총독부 소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객관적 자료를 부인하고 있음. 조법종의 발표는 「전라도 천년사」의 고조선 부인을 숨기기 위해 시종일관 거짓말만 하고 있음.

2. 마한 관련

ㅇ 61년 마한의 장수 맹소는 경주의 신라에 항복. 당시 신라는 경주로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로 맹소의 복암성은 경주 주변의 작은 마을로 추정됨. 조법종의 주장대로 마한이 전라도라면, 당시 신라가 전라도까지 영역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소설도 되지 못함.

ㅇ 「전라도 천년사」와 조법종은 고조선 준왕이 진국의 마한으로 피신했는데 마한이 익산지역이라 함. 전라북도 지역에서 '한'이 시작되어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의 명칭으로 확장되었다고 함. 「전라도 천년사」는 준왕이 간 곳과 역계경이 간 곳이 모두 진국이라고 하나, 준왕은 남쪽의 한(韓)으로 갔고, 역계경은 동쪽의 진국으로 갔으므로 사실과 다름. 따라서 한반도 남쪽에 진국이 있었고, 진국이 삼한으로 나누어지며 그 중 전라도가 마한이라는 「전라도 천년사」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는, 그들의 소설에 불과

--- 소결: 후삼한은 韓(황하 동쪽 제수 북쪽)에 있었음 ---

ㅇ 「전라도 천년사」와 조법종의 말은 소설도 안 되는 헛소리에 불과 (준왕은 남쪽 으로 갔고, 역계경은 동쪽 진국으로 갔는데 이들은 한과 진국이 같은 곳이며 한반도 남부라는 전제에서 말하고 있음)

ㅇ 전삼한 고조선은, 서기전 1500년경 辰韓 지역이 추워지면서 辰韓이 약화되어, 삼한조선은 신·말·번의 3조선이 병립하는 삼조선 체제로 변화됨. 진조선을 대체한 대부여의 제후국이었던 진번조선에 대한 진개의 침입으로 삼조선의 연결고리로 기능하고 있었던 중국과의 무역로가 해체되면서 열국시대가 됨. 준왕은 고조선의 왕이 아니라 예맥조선의 왕임. 예맥조선은 북경과 당산에 있었던 나라로 열국 중 하나이지 고조선은 아님. 준왕이 피신한 곳은 번조선이 중국 동부에서 밀려나 정착하고 있었던 韓(황하 동쪽 제수 북쪽) 지역임. 역계경이 간 곳은 예맥조선의 동북쪽에 있었던 진국인 북부여임. 조선인들은 과거 진한이 다스렸던 요서지역을 점유한 나라를 정통성 있는 나라로 간주하여 진국이라 함.

ㅇ 열국시대 소국들은 진한(천자국)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로부터 독립한 국가라는 의미에서 마한(제 이인자)을 자칭함(61년 신라에 항복한 맹소도 마한이라 자칭하고 있었음, 후에 고구려에 복속하는 소국들도 마한=말갈이라 자칭). 韓 지역을 예군 남려가 지배하고 있다가 준왕의 후손이 정권을 탈취하여 마한이라 함.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망하고 왕검성의 주민들이 낙랑군으로 강제 이주되면서 일부가 韓으로 도피하자, 마한이 땅을 주어 살게 함. 이들이 진한(예맥조선과 북부여는 서로 진한이라고 다툼)의 유민이라 하여 진한으로 자칭. 이들과 韓에서도 구석으로 쫓겨난 변한인이 합병하여 변진이 됨. 즉 변진은 신라임. 즉 후삼한은 韓 지역에 있었던 사실상 마한 한 나라(변진은 신라로 마한의 속국)임.

ㅇ 후삼한 즉 마한의 북쪽에서 마한의 속국이었던 백제가 황하의 수류변동으로 마한이 혼란스런 틈을 타 서기 9년 마한을 정복하고 韓을 점령한 후, 번조선의 해상 무역망을 계승하여 요동반도와 한반도남부 중국 동해안, 황하, 양자강을 연결하는 환황해 무역세력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