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고조선 부인
1. 「전라도 천년사」 관련 부분
ㅇ 총설 15쪽
“중국 사서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조선 준왕이 정변으로 남하, 한의 왕이 되어 마한을 다스렸으며, 이후 진한 변한이 생겼다고 한다. 준왕이 이동한 지역에 대해 『제왕운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은 전북 익산 지역으로 보고 있다.”
ㅇ 선사·고대 2권 17쪽
“문헌 기록을 통해서 고조선과 관련하여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의 전개과정은 1) 전국 연나라가 동쪽으로 진출하기 이전 동호와 조선이 연과 경쟁하는 기원전 4세기 후반, 2) 연의 소왕 시절, 장수 진개로 하여금 동호와 조선을 공격한 직후인 기원전 3세기 전반 3) 진나라 공격을 받아 연나라 태자 단 이 요동까지 피신하다가 살해당하기 직전인 기원전 3세기 후반 4) 한 이 진을 대신하고, 위만이 준왕을 내몰고 조선을 통치했던 기원전 2세기 전반 5) 한무제가 군사적으로 공격하여 고조선을 붕괴시킨 기원전 2세기 후반 등 5단계로 구분된다.”
ㅇ 선사·고대 2권 14~19쪽
하가점상층문화와 십이대영자문화를 구별하면서 하가점은 고조선이 아닌 듯 말하고, 십이대영자문화는 고조선인 듯 말하면서 둘을 동방문화권과 북방문화권이 겹치는 위치에 있다고 함. 고조선은 기원전 1천년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언급하나 이어지는 내용과 일치하지는 않음.
ㅇ 선사·고대 2권 42쪽~51쪽
기원전 8~7세기에 '조선'이 청동기 단계에서 등장하며, 기원전 5~4세기에 ‘조선연맹체’가 형성되고, 기원전 3~2세기에 서북한 지역에 국가를 형성한다고 함. 단군조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군신화는 고조선이 고대국가의 지배체제를 형성하고 난 이후에 지배층에서 만들어진 건국 신화이지 실재한 역사는 아니라고 함.
2. 실증에 근거한 「전라도 천년사」의 내용 검토
(1) 준왕은 고조선의 왕이 아니라 예맥조선의 왕
① 『삼국지』 「동이전」에 준왕이 ‘고조선’의 왕이라 기재된 사실은 없고 ‘조선후’로 되어 있음.
② 『사기』 「흉노열전」에서 위만조선을 예맥조선이라 하며 위만이 국호를 바꾸었다는 기록은 없으므로 준왕의 조선도 예맥조선이라 할 수 있음.
③ 『삼국유사』는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문단을 나누어 다른 나라로 기술하고 있음.
④ 『제왕운기』는 단군조선, 기자의 후조선(後朝鮮), 위만(衛滿)의 후조선찬탈 순으로 기술하여 단군조선과 후조선을 구분하고 있음.
⑤ 준왕의 조선과 단군조선(고조선)은 구별되므로 준왕을 고조선의 왕으로 기술하는 것은 역사 날조임
(2) 고조선에 관한 문헌기록
① 『삼국유사』
- 『위서』와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조선이 요와 비슷한 시기에 건국하였다고 함.
-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이 1908세에 산신이 되었다고 함.
② 『제왕운기』
- 본기(本紀)를 인용하여 단군이 요와 함께 무진년에 흥하여 1038년 다스렸다고 함.
③ 『응제시주』
-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은 당요와 같은 날에 나라를 세우고 1,048년 다스렸다고 함.
④ 기타 『동국통감』 『세종실록지리지』 등 여러 사서에 단군이 기술됨
⑤ 「전라도 천년사」가 고조선에 관한 문헌 기록으로 제시하는 기사는 단군조선(고조선)이 망한 후의 기사로서 고조선에 관한 기록이 아님. 연의 침략을 받은 나라는 진번조선이고 전한의 침략을 받은 나라는 예맥조선(위만조선)으로, 이들은 중국과의 국경 부근에 있었던 소국에 불과함.
(3) 설화 형태의 역사 (단군신화의 역사적 사실성)
① 「전라도 천년사」는 조선의 역사설화가 지배층에서 창작한 이야기로서 그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나, 지배층은 역사를 문자로 기록함.
② 문자가 없던 시대 설화는 집단의식의 산물로서 특정 학자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으로서, 민중의 동의 특히 나이들어 경험을 축적한 기성세대의 동의를 통해 여러 세대에 되풀이해서 입으로 전달된 것임. 따라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틀을 취함. 이는 이야기가 기억하기 쉽게 단순화되거나 변형되더라도 이야기의 내용이 진실함을 의미. 일제와 한국의 소위 강단사학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세계 역사학계는 설화에서 역사를 찾아내는 연구방법을 취하고 있음.
③ 조선의 역사설화는 요서지역의 유적 유물에 의해 그 사실성이 입증됨.
④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의 마티너 로비츠 등은 요서지역의 서기전 7000년에서 서기전 5000년전 사이의 기장 농업인으로부터 한국어가 속한 트랜스유라시어어가 발원되었고, 황하 중상류의 유전자나 언어가 요서지역 문명의 유전자나 언어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함.
(4) 「전라도 천년사」의 북방문화권 날조
①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의 시기는 서기전 2300 ~ 서기전 1600으로, 조선의 건국설화에서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와 일치
② 「전라도 천년사」는 하가점상층문화와 십이대영자문화가 북방문화권과 동방문화권이 겹치는 지역에 있다고 지도에 그려 놓았으나, 본문에서는 전혀 근거를 말하지 않고 있어 무엇이 북방문화권인지 알기 어려음. 북방문화권을 만들어 홍산문화 등 요서지역 문명이 우리 선조와 무관하다 말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됨.
③ 홍산문화 전기(서기전 4500 ~ 서기전 3000)에 초기 국가단계의 성립이 인정되고, 홍산문화 후기(서기전 3500 ~ 서기전 3000)부터 청동기가 사용되므로 서기전 8~7세기에 '조선'이 청동기 단계에서 등장하며, 기원전 5~4세기에 ‘조선연맹체’가 형성되고, 기원전 3~2세기에 서북한 지역에 국가가 형성된다는 「전라도 천년사」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는 날조에 불과.
3. 소결
ㅇ 고려시대 때의 사람인 일연은, 예맥조선 이전의 조선이라는 의미로 단군조선을 고조선이라 하였음.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응제시주』 등 수많은 사료가 일치하여 요와 비슷한 시기에 건국된 고조선을 인정하고 있음. 이 사서들에 기재된 단군조선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단군조선은 물론이고, 그 이전 환국과 신시국까지 인정할 여지도 있음. 신시국은 홍산문화에 의해, 단군조선은 하가점 하층문화에 의해 증명됨.
ㅇ 예맥조선은 북부여, 낙랑국, 기타 여러 소국이 병존하였던 열국시대 때, 중국과의 국경에 있었던 열국 중의 한 나라에 불과하므로, 예맥조선을 고조선으로 보는 경우 우리 민족의 시간과 공간이 사실과 다르게 축약되어 버림.
ㅇ 일제는 우리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기 위해 예맥조선을 고조선이라 하였음. 「전라도 천년사」는 일제의 날조를 그대로 승계하기 위해 고조선의 유적 유물과 조선의 건국설화를 부인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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