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삼국초기 일식기록 분석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에 대한 첨언)

역사회복 2023. 4. 2. 21:23

1. 독자 역법 고려해야

덕흥리 고분에 의해 고구려가 중국과 다른 독자적 역법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독자적 역법이라고 아주 다른 것은 아니고, 큰달 작은달이 다르거나, 윤달의 배열이 다른 수준이다. 배달국에서 역법을 개발했다면 삼한조선 삼조선 열국 모두 우리의 역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박창범 라대일 등 기존의 연구는 우리 역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였으므로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물론 다른 역법으로 인해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도 하루 정도 다르고,(덕흥리고분이 간지가 하루 차이) 대부분의 경우 날자가 일치했을 가능성도 있어.(동수묘 간지는 일치) 기존의 추정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국이 사용했던 역법을 구체적으로 알기 전까지 일식자료는 삼국의 수도를 추정하는 참고자료로 가능하고 정밀한 추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2. 고구려 초기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는 116년에서 219년까지의 8개 일식기록을 활용하였다. '한 상고사'에서 밝힌 고구려 수도는 건국 시 홀본이고, 12년에서 209년까지 위나암성이고, 209년에서 247년까지 환도성이다. 필자는 위나암성과 환도성 모두 북경 동쪽 당산 지역으로 비정하였다.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는 경도는 필자의 위치비정과 일치하나, 위도는 북위 50도 정도로 추정하여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는 고구려의 독자역법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3. 백제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는 -13년에서 572년 20개의 일식기록을 활용하였다. '한 상고사'에서 밝힌 백제 수도는 건국 시 한지역 한성이고, 근초고왕 시 (근구수왕 시도 가능성) 한반도 한성이고, 그 이후는 다시 한지역 한성이고, 475년 이후 한반도이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20개 일식기록 중 368년, 516년, 547년, 572년 총 4개가 한반도의 관측으로 추정된다.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경도는 필자의 위치비정과 일치하나, 위도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는 백제의 독자역법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만약 백제가 중국과 무역을 하여 중국의 역법을 썼다고 가정한다면, 한반도의 것으로 추정되는 4개를 빼고, 16개로 최적관측지를 추정한다면 정확히 한지역 한성을 가리킬 것이다.

4. 신라 초기.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는 201년 이전 16개의 일식기록을 활용하였다. -54년에서 16년까지 7개이고, 124년에서 201년까지 9개이다. '한 상고사'에서 밝힌 신라 수도는 59년까지는 韓지역이고, 그 이후는 경주이다. 박창범 라대일은 수도의 이전을 모르고 7개와 9개의 완전히 관측 위치가 차이나는 기록으로 하나의 위치를 추정하였다.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는 신라에 대해서는 전혀 엉뚱한 위치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이것의 원인이 7개와 9개의 관측위치가 서로 다른 기록을 함께 추정하는데서 기인한 것이라면, 7개와 9개를 분리하여 추정하여 더 정밀한 추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