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검성 2

신라의 건국은 韓에서 있었던 사건

『삼국사』는 서나벌의 건국세력이 조선의 유민인 辰韓 6부라고 명시한다. ​ 『三國史』 「新羅本紀」 赫居世 居西干 元年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 一曰正月十五日. 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髙墟村, 三曰觜山珍支村 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髙耶村, 是爲辰韓六部. 髙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徃觀之,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則收而養之, 及年十餘歳, 岐嶷然夙成. 六部人以其生神異, 推尊之, 至是立爲君焉 [시조의 성은 박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년 4월 병진일(일설에는 정월 15일)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하니 13세..

역사 2023.02.12

낙랑군은 왕검성에 설치된 것이 아니다. 원래의 漢나라 영토에 설치되었다. 낙랑군과 왕검성의 위치는 다르다.

낙랑군은 조선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원래의 漢나라 영토에 설치되었다. 漢은 요동고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예맥조선과의 경계로 하였다.[ 『사기』 「조선열전」 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 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築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屬燕(秦이 燕을 멸한 뒤에는 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浿水에 이르러 경계로 하고 燕에 소속시켰다.)] 즉 패수 남쪽에 요동고새가 있다. 요동고새와 패수 사이는 어양과 우북평이다. 즉 어양과 우북평이 漢 동북방의 국경도시이다. 이는 『사기』 「흉노열전」의 “그해 겨울, 흉노는 자주 변경으로 들어와 약탈했는데 어양군의 피해가 심하였다. 그래서 漢은 한안국을 어양..

역사 202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