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백제 2

비류백제=예(왜)부여

예부여의 건국과 동부여와의 구별 ​ 『삼국사』에는 두 개의 부여가 등장한다. 하나는 추모가 도망쳐오고 유화부인이 있던 동부여이다. 동부여는 유화가 사망하자 태후의 예로 장례를 치르고 추모는 감사를 표한다. 『三國史』 「髙句麗本紀」 東明聖王 十四年, 冬十月, 遣使扶餘饋方物, 以報其徳. ​ 고구려 초기 등장하는 부여는 동부여이다. 그 왕 대소가 금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대소가 죽고 일부는 갈사국을 세우고 나머지는 고구려에 투항한다. 『三國史』 「髙句麗本紀」 大武神王 22년 秋七月, 扶餘王從弟謂國人曰, “我先王身亡, 國滅民無所依, 王弟逃竄, 都扵曷思. 吾亦不肖, 無以㒷復.” 乃與萬餘人来投, 王封爲王, 安置掾那部. 以其背有絡文, 賜姓絡氏. ​ 이는 광개토대왕릉비문의, 동부여가 속민이었다는 기술과 일치한다. 갈..

역사 2023.02.14

韓 상고사

현재의 역사는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소설이다. 이 책이 그 소설성을 입증하고 진실을 밝힌다. 상위 1%의 한국인은 반드시 이 책의 서문이라도 읽어야 한다. 서문 역사는 창작소설이 아니다. 사료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타국을 침략할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수상한 목적 하에 쓰여진 소설이 역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창작소설 수준의 유사역사학이 판을 치고 있다. 필자의 어조가 강하여 거부감이 들더라도 조금만 더 인내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필자는 최대한 억제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낙랑군은 조선이 아니라 한나라 영토에 설치된 군이다. 당시 전쟁에 이기면 토착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주시키는 것이 관행이었다. 중국 측 사료에 의..

역사 2022.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