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4

백제의 요서 진평

중국 사서가 기술하는 백제의 요서 진평은 다음과 같다. ​ (ㄱ) 『송서(宋書)』 「동이열전」 『송서』 「동이열전」 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其後高驪略有遼東,百濟略有遼西。百濟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 ​ 百濟國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遼東의 동쪽 1천여리 밖에 있었다. 그후 고려는 요동을, 백제는 遼西를 점령하여 소유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晋平郡 晋平縣이라 한다. ​ (ㄴ) 『남제서(南齊書)』: 긁어서 지움. ​ (ㄷ) 『양서(梁書)』 「동이열전」 『양서』 「동이열전」 百濟者,其先東夷有三韓國,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弁韓、辰韓各十二國,馬韓有五十四國。大國萬餘家,小國數千家,總十餘萬戶,百濟即其一也。後漸強大,兼諸小國。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晉世句驪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 百濟..

역사 2023.02.15

갈석산 위치의 명명백백한 증거: 기주협우갈석도 冀州夾右碣石圖

기주협우갈석도 冀州夾右碣石圖 ​ ​ ​ 지도의 바다에 쓰여 있는 문구가 다음과 같다. ​ ------------------- 冀之北貢 自沽易涿遼水入海 而後西向以上大河 永達冀都 此時九河未熟於海 而碣石正在河口 於其遡河西上 則碣石在右 故曰夾右碣石 ​ 기주의 북쪽에서 공물을 바치려면, 고수 역수 탁수 요수로부터 바다로 간 후, 서쪽으로 대하를 올라가서 멀리 기주의 도읍지에 도달한다. 이 때 구하(황하)가 바다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런데 갈석이 똑바로 하구에 있어, 갈석을 의지하여 황하를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갈석이 오른쪽에 있으므로 갈석을 오른쪽으로 낀다고 말한다. ------------------------ ​ 다른 많은 사료도 황하 어귀에 갈석산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기주협우갈석도는 시각적으로 명..

역사 2023.02.10

「일본서기」의 일본은 열도백제이다. 야마토정권은 없었다.

「일본서기」에 倭나 大倭(大和)는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되어 있고, 대왜가 야마토로 발음될 수도 없다. 예군 묘지명에서 일본은 백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서기」의 일본은 백제이지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된 大倭(大和)가 될 수 없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열도를 지방행정구역으로 지배하다가,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별칭인 ‘일본’으로 독립하면서 열도인을 다스릴 목적으로 가공의 역사를 기술한 책으로 용비어천가와 같은 문학서이다. 열도에 왜계의 야마토 정권이 성립한 적이 없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나오는 야마일(邪馬壹) 또는 야마대(邪馬臺)국은 가야계의 나라로 왜가 아니다. 일제유사사학은 일본이 한국이었음을 부정하기 위해 야마토왜라는 가공의 왕조를 창작하였다. 일제유사사학이 만든 일본고대사는 ..

역사 2023.02.04

요동반도는 백제 영토였고, 신당전쟁으로 신라가 차지하였다.

『괄지지』에 “백제국 서남 발해 중에 큰섬 15개가 있는데 모두 읍락이 있고 사람이 거주한다. 백제에 속한다.”라고 요동반도백제가 기술되어 있다. 발해 중에 서남쪽에 큰 섬이 있는 곳은 요동반도밖에 없다. 『구당서』 『신당서』 『통전』 『삼국사기』에 백제 땅을 신라와 대진(소위 발해)이 나누어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요동반도가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소위 강단사학계는 요동지역으로 옮겨진 웅진도독부를 대진이 차지하여 『구당서』 『신당서』 『통전』 『삼국사기』가 헛소리를 하였다고 주장한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괜히 백제와 무관한 곳에 웅진도독부를 옮겼다는 말이 더 헛소리일 것이다. 『괄지지』는 638년부터 642년까지 편찬된 책으로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위 ..

역사 2023.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