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 비문 3

광개토대왕릉비문 병신년조 기사 초입부의 올바른 해석 (소위 신묘년조 비문 해석) (전치문설은 개솔)

1. 일제가 본 광개토대왕릉 병신년조 문장의 초입부는 다음과 같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入貢于)百殘 (聯侵)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討伐殘國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속민이어서 줄곧 조공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 백제에 조공하며 연합하여 신라를 침략하였으므로 臣民(=신라)을 위하여, 영락 6년 丙申년부터 왕이 친히 수군을 이끌고 百殘國을 토벌하였다.] - 김병기,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학고재, 2005. 156-163쪽에 의해 入貢于가 渡海破로 변조되었다고 보았다. (날조된 글자의 글씨체가 다르고 글자의 위치도 다르다) - 계연수가 1898년 탁본한 내용을 토대로 이유립이 복원한 이유립본에 근거하여 聯侵으로 보았다. (윤창열, 「광개토태왕비문과 환단고기의 整合性..

역사 2023.02.06

광개토대왕릉비문 기해년 기사의 날조

광개토대왕릉비문은 기해년 문장도 날조되어 있는데 원래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于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喜後) (稱)其忠□ □遣使還告以□計 [太王(喜後)의 喜는 김병기의 추측이고 後는 필자의 추측이다. 궤파성지의 경우 태왕이 기뻐한 것과 모순되므로 글자를 지웠을 것이다.] ‘潰于城池’가 ‘潰破城池’로 날조되어 있고,[김병기,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학고재, 2005. 166쪽.] 喜後가 지워져 있다. 날조를 바로잡아 해석하면 「영락 9년 기해년에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내통하였다. 왕이 평양으로 순시하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께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있다가 성지(城池)에서 도주하여, 신이(노객은 항복한 나..

역사 2023.02.05

韓 상고사

현재의 역사는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소설이다. 이 책이 그 소설성을 입증하고 진실을 밝힌다. 상위 1%의 한국인은 반드시 이 책의 서문이라도 읽어야 한다. 서문 역사는 창작소설이 아니다. 사료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타국을 침략할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수상한 목적 하에 쓰여진 소설이 역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창작소설 수준의 유사역사학이 판을 치고 있다. 필자의 어조가 강하여 거부감이 들더라도 조금만 더 인내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필자는 최대한 억제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낙랑군은 조선이 아니라 한나라 영토에 설치된 군이다. 당시 전쟁에 이기면 토착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주시키는 것이 관행이었다. 중국 측 사료에 의..

역사 2022.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