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국학 기초 낭독 22

역사회복 2026. 4. 1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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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두막국과 동부여

 

고두막의 집권

전술하였듯이 BCE 108이 예맥조선을 침략하여 예맥조선의 영토 전부에 군현을 설치하였다가 조백하와 요동외요로 후퇴하는데, 이 때 고두막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부여기에 대항하는 고두막의 활약을 기술하면서, 고두막이 졸본에서 즉위하고 동명이라 하였다고 한다. 사기』 「화식열전이 예맥조선을 멸한 후에도 동쪽에 예맥조선이 있다고 하므로, 고두막은 을 쫓아낸 지역의 예맥조선 왕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북부여기는 고두막이 졸본에서 즉위하였다고 하지만, 졸본은 홀본으로 금해호(金海湖) 서쪽 구하 유역 즉 지금의 平谷區로서 요동외요 내부의 요동군 지역이고 의 실효지배 영역이므로, 졸본에서 즉위하였다는 말은 홀본 지역의 실력자였던 고두막이 이 홀본을 점령하자 에 대항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고두막은 자기 세력을 이끌고 홀본을 떠나 이 군현을 설치한 지역에서 을 요동외요로 후퇴시키고 예맥조선의 왕이 되었다. 고두막은 을 몰아내면서 육성한 무력을 기반으로 BCE 87년 북부여의 왕권을 탈취하였다. 고두막에 쫓긴 북부여는 가섭원 또는 차릉으로 이주하여 동부여라 하였다.

 

 

해모수=東明

동명과 해모수는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 東明 주된 밝음 즉 해나 햇빛을 의미한다. 해모수도 해(밝음 빛)와 모수(맏이 으뜸)의 결합으로 보면 밝음의 으뜸으로 해나 햇빛을 의미한다. 東明(해모수)은 구체적으로는 햇빛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사람이나 해를 상징하는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대부여 이래 중심국의 지배자는 東明(해모수)이라 하면서 정통성을 주장하였다. 북부여의 건국자 즉 대부여의 왕권을 탈취한 세력도 자신을 東明(해모수)이라 하였고, 북부여의 왕권을 탈취한 고두막도 자신을 東明(해모수)이라 칭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시조를 동명왕이라 하여 자신들이 대부여의 정통성을 승계받은 나라라 주장하였다.

박혁거세도 알에서 나왔지만, 당시의 신라는 마한의 속국이어서 박혁거세를 동명(해모수)이라 하기 어려웠다. 금와는 변방으로 쫓겨난 동부여의 왕권을 탈취하고 고두막국을 멸망시켜 중심국이 되었지만, 변방 지역에는 대부여 즉 농경민의 정통성 설화가 확산되지 않아서 금와는 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김수로왕이 해처럼 둥근 황금 알에서 나왔다는 것은 김씨 집단이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 산동성에서 이주하였음을 증명한다. 가야는 중심국이라 하기 어려워 김수로왕을 동명(해모수)이라 하지는 않았다. 김알지도 계림국의 건국설화에서는 알에서 나왔겠지만, 탈해왕 시 김알지의 계림국이 신라와 합병하고 김알지가 신라의 왕이 되지 못했으므로 신라의 역사에서는 김알지가 금궤에서 나오는 것으로 격하된다.

東明(해모수)은 햇빛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사람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東明(해모수)이 하늘의 아들로 변형되었다. 東明(해모수) 설화 이전에는 진조선 지역 즉 고구려의 영토에선 단군 즉 지배자가 하늘의 아들이라는 설화가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개토대왕비문에서는 추모왕을 天帝之子라 하고, 동명왕편에 인용된 구삼국사는 추모가 자신을 天帝之孫이라 한다. 그러나 東明(해모수)의 원 의미가 햇빛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사람이나 해를 상징하는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魏書, 北史, 隋書에서 추모가 자신을 태양의 아들로 말하는데서 재확인된다.

 

금와의 집권

곤연 출신의 금와는 동부여의 왕권을 탈취하고, BCE 58년 고두막국을 멸하였다. 즉 고두막의 나라는 고두막의 사후, 바로 동부여에 의해 망한다. 북부여기BCE 58년 고두막의 아들 고무서는 재위 2년만에 죽고 고무서의 사위인 추모가 유언에 따라 대통을 잇는다고 하지만, 이는 정통성 승계의 단절을 막기 위한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 추모가 고무서의 뒤를 이었다면 고두막이 입성한 북부여의 수도에서 즉위해야 하는데 추모는 홀본에서 즉위하며, 사위의 승계를 고두막의 혈족들이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무서가 등극 후 바로 죽는다는 것은 금와의 동부여가 고두막-고무서의 나라를 점령하였음을 의미한다. 고구려 초기 동부여가 대국으로서 소국인 고구려를 압박했다는 것은 동부여가 원 북부여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BCE 6년 동부여왕 대소는 볼모를 교환할 것을 요청하고 유리왕은 태자를 보내려고 하였고 태자가 동부여로 오지 않자 대소는 화를 내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CE 9년에는 동부여의 사신이 유리왕에게 작은 나라가 사직을 보존하려면 동부여를 섬기라고 질책하자, 유리왕은 굴복한다. 대무신왕이 동부여 남쪽으로 진군하였으므로 동부여는 고구려의 북쪽에 있었다. 즉 북경 동북쪽 홀본이 고구려이고 홀본 북쪽이 동부여이다.

동부여는 남쪽의 예맥조선 지역 즉 당산지역은 점령하지 않았다. 동부여는 흉노가 서쪽에서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쪽으로 과 접하면 남쪽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완충지역으로 당산지역을 놔두었을 것이다.

북부여기또는 북부여기가 인용한 원 사료가, 고두막의 나라는 북부여에 포함시켜서, 동부여는 고구려에 정복 당하는 나라로만 기재하여, 고두막의 나라와 동부여를, 정통성을 승계하는 나라에서 제외한 것은 이 두 나라가 짧은 기간만 존속하여 정통성이 수시로 변화하는 현상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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