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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수(遼水)
요수는 특정 강의 이름이 아니라 중국 동북쪽 변경의 강이다
중국에서 요수는 주로 동북방 영토 끝의 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진개의 침략 이전 요수는 요동고새 바로 북쪽을 흐르는 중역수였다. 역수의 易은 경계라는 의미이다. 경계이므로 가장 먼 강인 요수이기도 하였다. 역수는 연과 조선의 경계였다. 진개의 침략으로 연의 영역이 확대되자 조백하가 요수가 되었다. 전한은 조백하가 멀고 지키기 어렵다 하여 요동고새와 영정하로 후퇴하자, 중역수가 다시 요수가 된다. 전한이 BCE 108년 예맥조선을 멸하고 조백하까지 영토로 하자, 조백하가 요수가 된다. 고구려가 新나라 시 요동고새까지 회복하자 후연까지는 중역수가 다시 요수가 된다. 고구려가 후연을 정복하고 북연을 세운 후에는 고구려와 북연의 경계인 당하가 요수가 된다. 요수는 중국 왕조의 동북쪽 마지막 강이라는 의미이므로 이를 특정의 강으로 오해하는 경우 동아시아사는 미궁이 된다. 요수가 변하면 요동과 요서도 변하였다. 조백하가 요수인 경우 요수 동쪽이 요동이나, 중역수와 당하가 요수인 경우 요서는 강 상류, 요동은 강 하류 지역이 된다.
또 황하 하류도 중국 동북쪽 韓 지역과의 경계가 되므로 요수라고도 하였다. 황하 하류를 기준으로 서쪽을 요서라 하여서, 백제가 요서를 점유하였다고 하였다.
(ㄱ) 『산해경』 「해내동경」
요수(潦水)는 위고 동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요양(潦陽)에서 발해로 들어간다.
(ㄴ) 『여씨춘추』 「유시람」
무엇을 여섯 하천이라 하는가? 하수, 적수, 요수(遼水), 흑수, 강수, 회수이다.
(ㄷ) 『회남자』 「추형훈」
무엇을 여섯 하천이라 하는가? 하수, 적수, 요수(遼水), 흑수, 강수, 회수를 말한다. ----- 요수(遼水)는 지석(砥石)에서 발원한다.
(ㄹ) 고유의 주석
고유는 『여씨춘추』 주석에서는 “요수는 지석산(砥石山)에서 발원하여 새 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요동의 서쪽에 직행하여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한다. 고유는 『회남자』 여섯 하천을 열거하는 부분에서는 “요수는 갈석산(碣石山)에서 발원하여 새 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요동의 서쪽으로 직행하여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하고 ‘지석에서 발원한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지석은 산의 이름으로 새 밖에 있다. 요수가 발원하는 곳이다”라고 한다.
(ㅁ) 『수경』
대요수는 새외 위백평산에서 발원한다. 동남으로 새로 들어와 요동 양평현 서쪽을 지나고 동남으로 방현 서쪽을 지나고 동으로 안시현 서쪽을 지나 남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또한 현도군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소요수가 발원하는 곳이다. 소요수는 요수현의 서남에 이르러 대요수에 들어간다.
(ㅂ) 『한서』 「지리지」
- 현도군, 고구려현, 요산은 요수가 나오는 곳이고, 요수(遼隊) 서남쪽에 이르러 대요수로 들어간다.
- 요동군, 망평현, 대요수가 새외로 나가 안시 남쪽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1,250리를 흐른다. -- 방현, -- 요수현, -- 요양현, 대량수가 요양 서남쪽에 이르러 요수로 들어간다. -- 안시현, --.
(ㅅ) 유신 『유자산집(庾子山集)』
- 燕客思遼水 秦人望隴頭
(연나라의 자객은 요수를 생각하고 진나라의 사람은 농산 머리에서 바라본다)
- 悲歌度遼水 弭節出陽關 李陵從此去 荊卿不復還
(비장한 노래를 부르면서 요수를 건넜고, 부절을 지니고 양관을 나갔다. 이릉은 이곳으로 부터 떠나갔고, 형경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네)
요수가 중역수인 경우
『산해경』의 潦水는 중역수를 지칭한다. 『한서』의 요수는 조백하로서 안시에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산해경 요수는 요양에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기 때문이다. 보정시(保定市) 역현(易縣)에 潦水村이 있고, 고대에 潦水가 潦水村 부근으로 흘러 潦水村이라 하였다. 고유는 후한 말기의 사람인데, 요수가 갈석산(지석산)에서 발원한다고 하므로 중역수를 요수라 하고 있다. 『회남자』는 유안(BCE 179∼BCE 122)이 편찬 했는데, 당시는 한이 영정하 이남만을 영토로 하는 시기이고 지석산에서 발원한다 하므로 그도 중역수를 요수라 기술하고 있다. 유신(513-581)은 북주의 대표적 문인이었는데 형가가 영정을 암살하기 위해 떠난 역수를 요수라 표기하고 있다.
요수가 조백하인 경우
『수경』의 遼水는 안시현 서쪽을 지나서 남쪽으로 가다가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므로 『한서』처럼 조백하를 지칭한다. 『기주협우갈석도』에 의해 추정하면 소요수는 온유하이고, 대요수는 조백하이다. 『수경』에 의하면 대요수는 새로 들어올 때 동남으로 들어온다 하는데, 조하가 새로 들어올 때 동남으로 들어온다. 대요수는 양평 방현 안시의 서쪽을 동남으로 지나 바다에 들어간다 하는데, 조백하가 동남으로 흐르다가 바다에 들어간다. 난하니 현재의 요하니 당시에는 새가 없어 새를 통과할 수도 없고, 새를 날조한다고 하더라도 새를 통과할 때 동남으로 통과하여 새 안으로 들어 왔다가, 다시 새를 나갈 때 동남으로 나가 바다에 들어갈 수도 없다. 조하가 163쪽 지도의, 새를 동남으로 들어와 새를 동남으로 나가므로 대요수임이 명백하다. 소요수는 동쪽으로 요동군까지 흘러서 요수현 서남에서 대요수에 합류하는데, 온유하가 동쪽으로 흘러 조백하에 합류한다.
『수경』에 기술된 다른 하북성의 강들은 온유하와 조백하가 될 수 없다. 역수는 어양군 천주현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구수는 역수에 합해진다. 성수는 발해군 안차현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거마하는 발해군 동평서현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루수는 어양군 옹노현에서 사구에 들어간다. 사구(笥溝)는 『기주협우갈석도』에서 옹노현 옆에 그려진 넓게 퍼진 물줄기이다. 『기주협우갈석도』는 “기주 북쪽의 여러 하천이 여기로 모여 바다로 들어간다. 물이 넘치지 않을 때는, 웅덩이마다 구분이 되지만, 물이 많아져 혹 넘치면 하나가 된다. 물길이 이곳에 이르면 어떤 하천인지 구별할 수 없고, 합하여 구십구개의 웅덩이라고 한다.”라고 사구를 설명하고 있다. 습여수는 고하로 들어가는데, 고하는 옹노현 서쪽에 이르러 사구가 된다. 포구수는 남쪽으로 옹노현 북쪽에 이르러, 동쪽으로 꺾어져 바다로 들어간다. 유수는 동남쪽으로 요서군 해양현을 지나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패수는 낙랑군 루방현을 나와서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가는데, 낙랑군이 요동고새 부근이므로 요수가 될 수 없다. 강단 유사사학은 조백하에서 현재의 요하까지 사이에 수많은 강이 수경에 나오지 않음에도 고대의 요하가 지금 요하라고 날조한다. 수많은 1차사료와 바보도 금방 알 수 있는 『기주협우갈석도』가 있어도 사기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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