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국학 기초 낭독 6

역사회복 2026. 4. 11. 10:54

https://youtu.be/hgr1twBFLsA

 

4. 강단 유사사학의 삼한소설

 

낙랑군 평양설보다 해로운 한반도 중남부 삼한론

강단 유사사학은 삼한조선(BCE 24세기BCE 14세기)을 부인하므로 강단에 의하면 삼한시대가 있을 수 없다. 강단 유사사학은 (황하 동쪽 제수 북쪽) 지역의 마한을 한반도 중·남부의 삼한으로 날조하면서 이 삼한이 BCE 2세기에서 CE 3세기까지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가공의 삼한시대를 설정하여 삼국사삼국유사에 기록된 백제 신라 가야의 초기 역사를 부정하고, 이를 토대로 가공의 야마토왜가 한반도 중·남부에 군사적·경제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재야 유사사학도 예맥조선(위만조선) 이후 한반도 중·남부에 남삼한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강단 유사사학에 동조하고 있다. 특히 온 국민을 위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는 삼한이 막연히 대륙에 있었고 방사천리라는 말만 반복하고, 강단 사이비들과 마찬가지로 삼한과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직접 연결된다는 소설을 제시한다. 나아가 삼국 바로 전의 삼한시대에 범죄자가 소도로 도망갈 수 있었다는 강단 사이비의 소설에도 동조하고 있다. 이 책은 교과서라 주장하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로 일관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도 삼한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에서 어느 정도의 영역을 점유하고 있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삼한을 날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야 유사사학도 유사사학에 불과하다. BCE 24세기 삼한조선 이외의 삼한은 없는데, 재야 사이비들도 강단 사이비들처럼, 진수와 범엽의 오해를 수용하면서 가공의 BCE 2세기 이후의 삼한소설을 작성하고 있다. 그 위치도 한반도 남부라 하거나 횡설수설로 일관하여 유사사학성을 과시한다. 삼국 바로 전 삼한설은 낙랑군 평양설을 능가하는 소설로서 역사광복을 망치는 주범이다.

 

삼국지후한서의 모든 내용을 3세기의 일로 날조

강단 유사사학은 삼국지지역에 대해 3세기의 일로 기술한 것은 공손강의 대방군 설치와 낙랑군·대방군과 辰韓의 기리영 전투의 두 사건뿐임에도, 삼국지후한서지역의 마한에 대해 기술한 것을 모두 3세기의 일이라고 근거없이 의제하면서 삼국사초기기록을 부정한다. 필자는 위에서 삼국지후한서의 사료비판을 통해 BCE 24세기에 삼한조선이 있었고, 삼국지후한서지역의 마한을 삼한으로 오해하고 BCE 24세기BCE 14세기 삼한조선에 대한 사료를 마한에 대한 설명으로 오해하였음을 밝혔다. 78개 나라는 삼한조선 시 중국 동부 요서 요동 한반도에 걸친 나라들이었고, BCE 2세기 지역의 나라는 마한 한 나라이다. 이 마한도 CE 9년에 망하므로 3세기까지 78개국이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다는 주장은 조선총독부 소설을 향한 무한한 충성심 외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

강단 유사사학이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선 사료비판을 통해서 삼국지후한서의 횡설수설 속에서 명확한 사실을 찾아내어 근거를 대야 한다. 그들은 아무런 입증 없이, 즉 마한왕이 왜 辰王인지, 弁辰辰韓·弁韓은 어떤 관계인지, 왜 진수는 辰韓·弁韓의 수가 24개라 하면서 23개만 열거하고, 마한의 수는 범엽은 54개라 하는데 진수는 55개를 열거하는지, 왜 진한은 6부이기도 하고 12국이기도 하는지, 한반도 중·남부가 어떻게 방사천리가 되는지 등에 대한 납득할 만한 구체적 설명 없이, 횡설수설로부터 바로 그들의 소설에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주장한다. 이러한 행태를 역사학의 정상적 연구 방법이라 인정하기는 어렵다.

 

강단 유사사학이 말하는 辰韓은 경상도인가 경기도인가?

삼국지에 의하면 246년 조위는 辰韓 여덟 마을을 낙랑군에 귀속 시키려 했는데 이 반발하여 대방군을 공격하자, 대방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을 침략하여 궁준이 전사하였지만 하였다. 진수는 을 멸하는 기사 바로 앞에서 공손강은 군대를 일으켜 을 공격하여 帶方에 복속시켰다 하므로 멸했다는 것은 복속시킨 것이 아니라 이라는 정치체가 있었다면 그것을 말 그대로 없앴음을 뜻한다. 여기의 辰韓8국은 황하 이동으로 황하 서쪽에 위치하게 되어 황하 동쪽의 백제에서 분리되었고, 그 결과 조위에 쉽게 멸망되었다.

강단 유사사학은 辰韓4세기까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없다. 야마토왜 선생님께서 4세기에 가야로 들어오시므로 4세기까지는 辰韓이 죽어도 버텨줘야 하기 때문이다. 강단 유사사학은 조위가 辰韓을 멸하여 충청도까지 차지하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경기도와 충청도가 辰韓인 것이 되어 辰韓이 경상도라는 그들의 주장과 모순된다. (황하 동쪽 제수 북쪽)의 마한을, 아무런 근거 없이 조선총독부 소설에 맞추어 한반도로 옮겨 놓다 보니,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다.

준왕은 위만에 쫓겨 남쪽의 으로 갔는데 그가 간 곳은 海中이었다. 예맥조선이 북경에서 당산까지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준왕이 간 지역은 (황하 동쪽 제수 북쪽)이다. 은 예맥조선의 남쪽이고, 당시에 은 황하와 제수로 대륙과 분리되어 海中이었다.

강단 유사사학은 준왕이 남쪽으로 간 이 한반도 중·남부라 하는데, 한반도 중·남부에 해중이라고 표현할 만한 곳은 없다. 준왕이 한반도 중·남부에 왔으면 조위가 침공한 辰韓이 경상도가 되어야 하는데, 강단 유사사학은 조위가 경상도를 영토화하였다는 소설을 작성하기는 어려웠는지, 그들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삼국지의 문언과 달리 馬韓이 조위와 싸웠다고 주장하거나, BCE 24세기 요서의 목지국이 시공초월하여 나타나서 싸웠다고 하거나, 백제가 중심이 되어 목지국과 공동 대응하였다고 하거나, 신분활국(신분고국)이 싸웠다고 하는 등 문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들에게 사료는 창작의 방해물이다.

 

강단 유사사학의 辰國 날조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인 辰國은 요서를 차지한 우리 민족의 중심국을 말한다. 삼한조선 시 요서의 辰韓이 천자였기 때문에 삼한조선 이후에도 요서를 차지한 강대국을 辰國이라 하였다. 강단 유사사학은 辰國의 실체가 밝혀지면 우리 역사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낙랑군 평양설이 무너지므로 辰國도 한반도 중·남부로 위치시킨다.

과의 직접적인 무역을 시도한 나라에 대해 사기』 「조선열전은 판본에 따라 眞番旁衆國이나 眞番旁辰國’, 한서』 「조선전資治通鑑』 「漢紀十三眞番·辰國으로 기술하고 있다. 강단 유사사학은 예맥조선 북쪽에 나라가 있으므로, 예맥조선이 한반도 남부와 한나라가 직접 교역하려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眞番旁衆國’, ‘眞番旁辰國’, ‘眞番·辰國중에서 어느 견해를 취하든, 眞番, 衆國, 辰國 모두를 예맥조선 남쪽이라 한다. 그들의 낙랑군 평양 소설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진국을 예맥조선 남쪽에 위치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삼국지에 의하면 진국은 예맥조선의 남쪽일 수 없다. 삼국지위략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魏略曰: , 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 [당초, 우거가 패망하기 전에, 조선의 재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으로 떠났다. 당시 그를 따라나가 정착한 백성이 2천여 호였고, 또한 조선과 조공이나 번상으로 왕래하지 않았다.]

 

사료가 동쪽으로 갔다고 기술하고 있어도, 강단 유사사학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辰國을 한반도 중남부라 주장한다. 그들은 역계경이 동쪽의 辰國으로 갔다는 말을 남하한 것으로 변경한다.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삼국지가 마치 남쪽으로 기술한 것처럼 아무런 해명도 없이 남쪽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억지를 써도 진실은 가려질 수 없다. 한반도 남부와 은 같은 농경사회여서 무역할 것이 많지 않았다. 즉 무역의 이익이 별로 없었다. 이 필요로 했던 말 등 무역의 이익이 있는 품목은 경제의 성격이 다른 몽골초원에 있지 한반도 남부에는 없다. 북부여는 으로부터 농산물을 필요로 하지만, 한반도 남부는 에서 농산물을 사올 필요가 없는 지역이다. 예맥조선이 과 강화하기 위해 보내려 했던 말 5000필은 한반도 남부에서 키울 수 없다. 키워도 비싸서 이 수입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맥조선은 예맥조선의 북동쪽에 있는 북부여와 한나라 간 무역을 방해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강단 유사사학은 비교우위에 의해 무역이 발생한다는 기본 상식도 없이 일제의 소설을 지키기 위해 진력한다.

사기』 「조선열전辰國은 북부여로 보아야 하므로, 辰國이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다는 강단의 주장은 조선총독부 소설을 향한 그들의 올곧은 충성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강단·재야 유사사학의 삼한시대 날조

강단 유사사학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삼한이 BCE 2세기에서 CE 3세기까지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달리, 삼국사 삼국유사 의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고구려를 포함한 우리 민족 전체를 삼한이라 말하고 있다. 고구려의 유민들도 고구려를 포함하여 三韓이라 표현하고 있다. 고구려 유민들은 자신을 삼한인이라 하기도 하고, 고구려를 진한이라고도 하였다. 삼한이 강단 유사사학의 주장대로 남한과 관련된 정치체들이었다면 고구려인들이 자신을 삼한의 일원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고구려인들은 본고의 주장대로 辰韓을 자처하고 있다. 고구려는 삼한조선의 辰韓 영역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辰韓을 자처할 수 있다. 낙랑왕 최리도 고구려 왕을 神王(辰韓)이라 하여 고구려를 辰國으로 인식하였다.

강단 사이비들은 한반도 남쪽이 삼한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삼한의 사용례와 맞지 않자, 삼한이 7세기 무렵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총칭한 말로도 쓰였다고 말을 바꾼다. 그러나 이 주장에 근거는 전혀 없다. 말바꾸기를 통해 그들의 소설을 지켜서 조선총독부 소설에 충성하려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궤변을 늘어놓아도 그들은 고구려인이 辰韓을 자처한 이유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소설에서, 辰韓은 신라로서 마한의 속국이며, 실제 역사에서도 신라는 한때 고구려의 속국이었으므로, 고구려인이 辰韓=신라를 자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삼한조선(BCE 24세기BCE 14세기) 시기 이외에 삼한시대는 없었다. 지역의 마한에, 예맥조선 왕검성에서 망명하여 진한의 유민이라 자처한 사람들과, 지역의 원주민으로서 변한을 자처한 사람들이, 마한의 주민으로 살고 있어서 진수와 범엽이, 삼한조선에 관한 사료들을 보고, 의 마한을 삼한으로 오해하였을 뿐이다. 한반도 중·남부에는 오해할 만한 삼한조차 없었다. 강단 사이비의 삼한시대는 완전히 거짓말이고 소설이다. 삼국의 초기 역사를 부정하여 가공의 열도 국가인 야마토왜의 한반도 진출을 합리화하기 위한 새빨간 조선총독부의 소설일 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은 단군의 삼한조선을 알고 있었으므로 삼국을 포괄하여 삼한이라 하였다. 신라인들은 고구려와 백제를 멸하고 삼한을 통일하였다고 자부하였다. 물론 백제의 중국 동부 영토를 상실하였고 고구려 영토는 당과의 협약대로 요양 남쪽과 동쪽만을 확보하였으므로 실질적인 삼한 통일이라 하기는 어렵다.

()조선(삼한조선) 이후, 요서를 차지한 강대국이 국호 이외에 辰國(辰韓)으로 자처하거나 그 나라를 辰國(辰韓)으로 불러주는 경우가 있었고, 소국들이 이인자를 의미하는 마한(말갈)이라 자처하는 경우가 있었을 뿐, 삼한시대는 없다. 재야 유사사학도 후삼한(남삼한)을 인정하거나, 삼국시대 바로 전에 삼한시대가 있었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고 있다. 낙랑군 평양설이나 야마토가야설보다 더 해로운 소설이 한반도 중·남부의 삼국 바로 전 삼한설이다. 이 설은 낙랑군 평양설과 야마토가야설의 토대로 기능하고 있다. 삼국 바로 전 삼한이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은 논리나 내용이 모호한 횡설수설로서 강단의 박수부대가 된다.

재야 유사사학은 낙랑군 난하설을 지키기 위해, (황하 동쪽 제수 북쪽)의 마한을 진수와 범엽이 삼한으로 오해했다는 필자의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 낙랑군 난하설은 강단 유사사학의 마한(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삼한)이 바다로 퐁당 빠진다는 반박에 한 마디의 반론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강단 유사사학의 박수부대로 전락한 상태에 있다.

최치원은 고구려가 마한이고, 백제는 변한, 신라는 진한이라 하였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구려는 삼한조선 시의 辰韓 지역을 차지하였으므로 고구려를 辰韓이라 하여야 한다. 신라는 辰韓의 유민을 자처하였을 뿐이고, 을 떠나 삼한조선 시 마한 지역이었던 경상도로 이주하였으므로 辰韓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고구려와 백제를 멸하여 辰國(辰韓)의 정통성을 신라가 승계하였다는 의미로 신라를 辰韓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강단 유사사학의 마한(말갈) 날조

강단 유사사학은 마한이 특정한 정치체이고 말갈이 특정한 종족 명이라 한다. 삼국사에 의하면 의 마한은 CE 9년에 백제에 의해 망하는데, 강단 유사사학은 진서(晉書)에 마한이 등장한다고 하여 삼국사의 기사를 부정하고 백제를 마을국가로 축소시킨다. 그러면서 일본서기를 근거로 마한은 4세기 후반에 야마토왜의 침공으로 망한다고 주장한다. 4세기 후반 마한의 멸망에 관해 사이비들은 일본서기를 근거로 제시하나 그들이 제시하는 일본서기의 기사에는 전혀 마한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조선총독부 소설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무조건 마한이라 우기고 있을 뿐이다.

의 마한과, 강단 유사사학이 주장하는 가공의 야마토왜의 침공으로 망하는 한반도 남부의 가공의 마한은 전혀 관련이 없다. 진서(晉書)의 마한도 백제에 의해 망하는 의 마한과 전혀 관련이 없다. 무관한 것들을 연관시켜 소설을 작성하는 강단 사이비들의 천재성에 우리는 감탄해야 한다.

이세민은 형을 죽이고 부친 이연을 핍박해서 왕위에 오르자 역사의 평가가 두려워 실록을 개찬한 사람이다. 진서645년 고구려에게 거의 죽었다 돌아온 이세민이 주도하여 646년부터 20여명이 2년간 편찬한 책이다. 진서동이열전은 부여국, 馬韓, 辰韓, 숙신씨, 倭人, 비리등십국을 기술하는데, 고구려 백제가 없고, 馬韓조와 辰韓조는 삼국지조금 베끼고, 조공을 여러 번 왔다는 내용밖에 없다. 마한조는 조공한 해가 순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세민이 고구려 보기 싫어 고구려를 뺐고 고구려가 빠지다 보니 백제도 빼야 했다. 넣을 나라가 없어서 가공의 나라나 나라라 할 수도 없는 마을국가를 대신 넣었을 것이다. 이세민이 진서를 직접 편찬하게 된 동기도 기존의 여러 진서에 나오는 고구려가 보기 싫어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세민은 후세에 당의 역사를 쓸 때 고구려에 관해 쓰게 되면 이세민이 개망신 당했다는 것이 기술될까 봐 사서에서 고구려를 빼는 전통을 자기가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강단 유사사학은 진서에 마한의 기재가 없었어도 백제는 마을국가였고 마한은 야마토왜의 침공으로 망한다는 소설을 똑같이 작성하였을 것이다. 소설을 위해선 삼국사를 부정해야 하는데, 가공의 마한 소설에 대해선 마침 진서가 있으니 좋다고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진서辰韓이 가공의 나라가 아니라면, 조위에 망한 황하 서쪽의 마을이었던 辰韓8국일 가능성이 높다. 진서의 마한이 가공의 나라가 아니라면, 고구려의 지자체였던 마한(말갈)일 가능성이 크다. 마을나라들이 진나라와 교역한 것을 조공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단 사이비들은 가공의 마한을 한반도 서남부에 비정하고, 후한서삼국사에 나오는 후한과 고구려의 전쟁 시 참여하는 마한, 신라에 항복하는 맹소의 경상도 마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들의 소설은 앞뒤조차도 맞지 않는 어마무시한 천재성을 항상 보유한다. 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말갈을 특정 종족으로 만들어 종족을 창조하는 천재성까지 발휘한다.

마한(말갈)은 이인자를 자처하는 보통명사임에도, 그것을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가공의 특정 정치체로 만들고 가공의 야마토왜를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강단 유사사학의 작업은 가공의 야마토왜의 지배영역을 넓혀잡기 위해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함으로써 얻어진 어마무시한 노벨상감 연구 결과였다고 여겨진다.

 

강단 유사사학의 변한=변진=가야=임나 소설

에서, BCE 39년 진한의 유민이라 자처하는 신라(辰韓 6부가 세운 나라)마을은 원주민인 변한마을을 합병하여 변진이 된다. 즉 변진은 신라다. 삼국지는 변진에서 철을 생산하였다고 하고, 후한서는 진한에서 철을 생산하였다고 하는데, 철을 생산한 주체는 신라=변진=진한의 탈해 집단이다. 강단 유사사학은 삼국사기사는 못 본 척하고 변한이 가야(=임나)연맹체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나, 아무런 근거가 없는 소설에 불과하다. 가야계가 열도에 진출하여 세운 마을이 임나인데, 사이비들은 이미 BCE 1세기에 에서 실체가 없게 된 변한이, 3세기나 4세기에 한반도 남부에서 임나가 된다고 날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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